'두 명궁' 손흥민-케인의 못 말리는 '합작 본능', 다시 정상 궤도에 [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조남제 입력 2021. 10. 19. 11:30 수정 2021. 10. 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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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리그 첫 합작골 후 기쁨을 나누는 케인과 손흥민

안녹산은 8세기 때 중국 당나라의 무장이다. 사사명과 함께 일으킨 ‘안사(安史)의 난’은 당의 중앙 집권제가 흔들리는 전환점이 됐을 만큼 역사적 사건이었다. ‘대연(大燕) 황제’라 참칭했던 안녹산의 반란 세력에 휘말려, 당은 한때 패망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다.

비록 둘째 아들 경서에게 피살돼 뜻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안녹산의 무예 솜씨는 대단했다. 18가지 기본 무예[十八班武藝·십팔반무예]에 능통했다고 하는데, 자부심 넘치는 자신의 말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활을 쏠 수 있다[左右開弓·좌우개궁].”

군사 모략에선, 좌우개궁은 전체 국면을 살펴 여러 방향에서 적을 공격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곧, 좌우가 서로 호응할뿐더러 보완함으로써 효용성을 높여 성공을 꾀하는 전략·전술이다.

손흥민-케인 듀오, 지난 시즌 EPL을 뜨겁게 달구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름난 활을 지니고 있다. 천하에 자랑할 만한 좋은 활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나 된다. 명가가 자긍심을 한껏 부풀리며 내세우는 두 명궁은 다름 아닌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다.

손흥민과 케인은 토트넘의 두 공격 핵이다. 객관적 수치로 입증된다. EPL 2020-2021시즌에, 손흥민은 37경기를 소화하며 17골 10어시스트의 대풍가를 노래했다. 이 시즌에, 케인은 35경기에 나서 23골(득점왕) 14어시스트의 빛나는 결실을 올렸다.

둘이 터뜨린 40골은 팀 전체 득점(68골)의 58.8%에 달했다. 그만큼 둘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손흥민과 케인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가 됐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물론 둘은 홀로서도 돋보일 만치 왕성한 활약상을 펼쳤다. 지난 시즌에, 둘이 각자 거둬들인 전과는 EPL 최상위권에 당당히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그런데 둘이 함께 엮어 빚어내는 수확물은 그 이상으로 눈부셨다. 정점에서, EPL을 호령하는 사자후를 토했다. 역대 한 시즌 최다 합작 득점(14골) 기록을 새로 세우며 포효했다.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에 걸맞은 화려한 발자취였다. ‘마음의 눈’으로 주고받는 듯한 절묘한 콤비 플레이는 지난 시즌 EPL 으뜸의 볼거리였다.

손-케인이 환상적 호흡을 바탕으로 내뿜은 강렬한 빛줄기에 1994~1995시즌 블랙번 로버스의 앨런 시어러-크리스 서턴 콤비가 밝혔던 빛은 퇴색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2021-2022시즌에 들어와서 손-케인의 합작품은 실종됐다. 7라운드가 끝날 때까지도, EPL 팬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던 둘의 멋들어진 합작 골은 연출되지 않았다. 싱숭생숭한 뒷이야기만 무성한 채 시간이 흘러가며, 토트넘은 한때 3연패의 나락에 떨어졌다. 토트텀 팬들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10월 18일 손흥민이 케인의 도움으로 골을 터뜨리는 순간

손-케인, EPL 올 시즌 합작품 첫걸음 내디디며 대기록 경신 눈앞

2021년 10월 18일(이하 한국기간), 손흥민-해리 케인 듀오는 비로소 첫걸음을 내디뎠다. 2021-2022시즌 EPL 8라운드에서, 둘은 다시 합작품 결실에 나섰음을 알리는 고동을 울렸다. 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이 케인이 내준 컷백 패스를 받아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꿰뚫음으로써 이번 시즌 첫 합작 골 개시를 매듭지었다.

단순한 하나의 합작 골이 아니다. 먼저 답답했던, 7개월 10일간 18경기에 걸쳤던 기나긴 침묵을 깼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올 3월 8일, 지난 시즌 27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을 끝으로 시작된 합작 무득점 행진에 마침표를 찍은 귀중한 첫 합심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기록적 측면에서 한결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EPL 통산 합작 골 기록 부문에서, 손-케인 듀오는 이제 경신을 눈앞에 뒀다. 2015-2016시즌부터 호흡을 맞춰 온 둘은 지금까지 35골을 함께 엮어, 첼시 에서 디디에 드록바-프랭크 램퍼드가 세운 기록에 한 걸음 차로 다가섰다. 앞으로 두 걸음만 더 내디디면 EPL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대기록 수립은 희망적이다. 케인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적설에 휩싸이며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다시 융합하는 기미를 보이며 살아나고 있다.

따라서 손-케인 듀오가 예전의 폭발력을 되찾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싶다. 지난 10월 1일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G조 NS 무라(슬로베니아)전에서, 둘이 이번 시즌 첫 합작 골맛을 보며 재가동의 신호탄을 쐈다는 점도 그 하나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10월 1일 시즌 첫 합작골을 만든 무라전 후 승리를 자축하는 케인과 손흥민

두 자루의 붓으로 가지런하게 그림을 그릴[雙管齊下·쌍관제하] 수 있다면, 대단한 능력이다. 양손에 쥔 붓을 균형 있게 휘두를 수 있을 때, 좋은 작품이 빚어질 수 있다. 토트넘의 두 붓인 손흥민과 케인이 합심해 창출할 새 역사의 태동이 기다려진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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