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후보에 윤성희·조해진·최은미·정지돈.. 축제가 시작됐다

이기문 기자 2021. 10.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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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동인문학상 후보 4인서로에게 쓰는 편지] [上]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동인문학상은 독자와 함께하는 한국문학의 축제. 2021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로 윤성희·조해진·최은미·정지돈(등단 연도순)이 뽑혔다. 다음 달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상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네 작품을 소개한다. 올해 한국 문학의 빛나는 성과를 함께 읽어 보시기를.

조해진은 윤성희에게 “인물들이 내 곁에 머물렀다”고 했다. “믿으실까요? 오늘은 만우절이 아니고 전 농담에 재능이 없답니다.” /오종찬 기자

”당신 글을 읽다보면, 환하게 숨을 쉴 수 있어요”

조해진 작가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나는 조해진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인 ‘환한 숨’의 표지를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표지에는 ‘환한’ 과 ‘숨’ 이라는 단어 사이에 길게 줄표가 그어져 있습니다. 마치 이 소설집은 ‘환한’이라는 단어와 ‘숨’ 이라는 단어의 사이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소설집 ‘환한 숨’에는 ‘환한 숨’이라는 단편이 없습니다. 제목의 씨앗이 된 것으로 짐작되는 ‘환한 나무 꼭대기’와 ‘하나의 숨’이라는 단편이 있을 뿐이지요.

‘환한 나무 꼭대기’는 젊은 시절 승려가 되려 했다가 환속하고 이제는 간병인이 된 강희라는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나는 이 단편을 김승옥 수상 작품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내 마음을 붙든 말은 이거였습니다. “난 정확하게 죽고 싶어.” 강희가 돌보는 암 환자인 혜원이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단편의 마지막 부분에 정확하게, 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너는 암 같은 거에 걸리지 말고, 병원 아닌 데서, 그러니까 아주 멋진 데서 편하게 떠나면 좋겠다, 정확하게.” 이 말에는 세 번의 쉼표가 있지요. 그리고 정확하게, 라는 말을 서술어 없이 끝냅니다. 당신이 얼마나 세심하고 정교하게 소설을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소설의 마지막은 강희가 느티나무 아래 버스 정류장 벤치에 누워 여름밤을 올려보면서 끝납니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강희는 생각했습니다. “동그란 달은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처럼”보인다고. 책 제목을 생각하고 다시 이 문장을 읽자 나무 꼭대기를 환하게 물들이는 달빛이 이 소설집 전체를 감싸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조해진의 ‘환한 숨’

‘하나의 숨’은 실습을 나갔다 사고를 당한 열아홉 살 ‘은하나’가 나오지요. 하나는 인공호흡에 의존해서 겨우 숨을 쉽니다. 그런 제자의 사고를 겪은 기간제 교사인 화자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공호흡기를 통과한 하나의 가느다란 숨이 물결처럼 움직이는 공기를 타고 내가 생활하는 곳에까지 유입되고 있으며 내가 그 숨을 들이켜면서 하나 대신 일하고 돈 벌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 저는 이 대목에서 뒷목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던져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이 어렵고, 두렵고, 비참하지만, 숨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겠지요. “어둠을 직시하면서도 결국엔 환해지는 그런 이야기”에는 ‘모두의 숨’이 필요하다고요. 환한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 힘겹게 숨을 내쉬자고, ‘환한 -숨’의 줄표는 저에게 그 말을 해주는 듯합니다. 내 숨과 당신의 숨도 어딘가에서 합쳐지길 바랍니다. 건강하길. ㅡ윤성희 드림

윤성희는 조해진에게 “작가의 우정은 서로의 문장을 흠모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결국 환해지는 이야기를 많이 써주길 바랍니다.” /이태경 기자

◇”모두가 특별한 사람들...그래서 힘이 납니다”

윤성희 작가에게

요즘 들어 나이 많은 여성들에게 부쩍 눈길이 가곤 합니다. 그녀들은 늦은 밤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기도 하고 어둑한 술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둔 채 물끄러미 텔레비전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어느 집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의자라든지 장난감 같은 것을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시선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다시 상상으로 확장됩니다. 그녀들 중 누군가는 공항에 가기는 무섭지만 여권은 갖고 싶어서 궁리 중인 건 아닌지, 모르는 아이의 킥보드를 자전거 보관대에 숨겨놓고는 새벽에 몰래 타고 다니지는 않는지, 어떤 풍경 속에서 유년을 보냈고 그들의 부모는 어떻게 만나 가족을 이루었는지, 살아오는 동안 소원해진 형제나 친구는 없는지, 누군가의 죽음을 겪은 뒤 삶의 방향이랄지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바뀐 적은 없는지, 상상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나이 든 여성들을 보며 상상을 이어가는 이런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지만 ‘날마다 만우절’을 읽은 이후로 그 상상의 안쪽이 정교해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저는 소설이란 결국 ‘인간의 얼굴을 그리는 장르’라고 늘 생각하는데도, 종이에 인쇄된 글씨가 어느 순간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로 입체화될 때면 퍼뜩 정신이 들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작품에 빠져들곤 합니다. 특히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정말이지 끊임없이 제 머릿속에서 얼굴들이 만들어져요. 당신의 소설에는 어떤 인물도 그냥 퇴장하는 법 없이 꼭 한 번은 특별한 습관이나 이력, 아니면 작은 모험을 시도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슬쩍 내보이니까요. 때로는 그 어둠의 농도가 잘 가늠되지 않는 깊은 동굴 같은 것을 들키기도 하고요.

윤성희의 ‘날마다 만우절’

‘날마다 만우절’의 표제작도 그렇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고모의 말에 한자리에 모인 ‘나’의 가족이 하룻밤 동안 회포를 푼다는 소설의 줄거리는 사실 중요하지 않죠. 고모네 집 평상에 앉아 백숙과 인삼차를 나누며 저마다의 삶에서 농담 같기도 하고 진담 같기도 한 일들을 이야기하는 장면, 그러니까 그들 각자뿐 아니라 그들을 스쳐간 사람들, 심지어 고모가 라디오에서 듣게 된 어떤 사연까지 한번씩 무대에 서게 하는 그 장면 자체가 중요한 것이겠죠. 당신은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무섭던 시기가 있었다고 썼지만, 여러 인물들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당신의 작품들에 독자는 도리 없이 위로받을 수밖에 없을 테지요. 이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메시지로 번역되는 소설들이니까요. ㅡ조해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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