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이 신뢰한 '공갈사기단' [取중眞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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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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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는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국제마피아파’ 행동대원이자 코마트레이드 직원이었던 박아무개씨의 요청으로 변호인과 접견했다"면서 박씨에게 제보받은 내용을 공개했다. 김용판 의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전달받은 현금이라면서 1억원과 5000만원이 각각 촬영된 현금 다발 사진을 공개했다. |
ⓒ 국회방송갈무리 |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공갈 범행으로 갈취한 금액이 거액이고, 범행 방법이 매우 불량하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단독 이인수 판사는 지난달 29일 성남 조직폭력배 국제마피아파 일원인 박아무개(31)씨의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고, 1억 9,330만 원을 추징했다.
현재 수원구치소에 있는 박씨가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병)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하며 박씨의 자필 진정서와 돈다발 사진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 의원은 "이 지사가 조폭으로부터 20억 원 가까이 받았다"며 이 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시절 받았다는 현금다발 사진을 파워포인트(PPT)로 국감장에 크게 띄웠다.
그러나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용판 의원이 공개한 사진은 허위로 판명됐다. 박씨가 지난 2018년 11월 21일 '사채업하고 렌터카 해서 돈 벌었다'며 페이스북에 올렸던 사진과 같은 것이었다. 돈다발과 함께 사진에 찍힌 명함의 카페는 2018년 8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는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 아닌 경기도지사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다.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장 재임 때 조폭한테 돈을 받았다'는 김용판 의원의 주장과 전혀 다른 내용인 셈이다.
김용판 의원은 전국 경찰 조직 '넘버2'인 서울경찰청장 출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조직폭력배 조직원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국정감사장에서 폭로할 수 있었을까? 최소한 10여 일 전 박씨에 대한 법원의 판결만 확인했더라면 김 의원은 그의 말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재명에 뇌물 줬다'는 박씨의 유죄 판결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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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박OO'의 2018년 11월 21일, 25일 게시물. 이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 등장하는 남성은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공익제보자라고 주장한 박철민씨와 같다. 2018년 11월의 게시물에는 "이래저래 업체에서 월 2000만원의 고정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 달렸다. 이 사진은 18일 장영하 변호사 및 김용판 의원이 공개한 사진과 동일하다. |
ⓒ 페이스북 박OO 계정 갈무리 |
박씨의 공갈 사기 행각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박씨는 5~6명의 여성과 함께 남성을 상대로 신체적 접촉을 하도록 유도한 다음 이를 빌미로 남성들의 돈을 갈취했다. 박씨는 남성을 선정하고 유인한 다음 성폭행 합의를 유도하거나 공범들에게 SNS 단체방을 통해 전반적인 범행을 지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씨와 함께 범죄에 가담한 일부 여성은 남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한 다음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는 역할을, 또 다른 일부 여성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호감이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담당했다.
박씨의 폭력 행위는 대체로 우발적인 상황에서 벌어졌다. 술집에서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의 얼굴을 여러 차례 때려 안구 출혈 등의 상해를 가하고, 이를 말린 일행은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게 한 뒤 얼굴을 여러 차례 때리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등 폭행했다. 국제마피아파 후배 조직원을 폭행한 이유는 '버릇없이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마약도 상습적으로 복용했다. 주로 필로폰을 물에 희석해서 마시는 방법으로 투약했다. 이 외에도 박씨는 다른 사람의 차량을 아무런 이유 없이 손과 발로 가격해 파손했다.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는 택시 창문을 붙잡고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위력을 행사해 택시 영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인수 판사는 판결문에서 "폭력 범행 등으로 다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누범 기간 중에 여러 차례 폭력 행위를 저질렀고,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공갈 범행으로 갈취한 금액이 2억 3,010만 원에 이르는 거액이고, 여성과 신체적 접촉을 유도하고 이를 빌미로 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범행 방법이 매우 불량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조폭 말 믿었다가 역풍... '진실' 밝혀낸 건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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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한준호 원내대변인이 19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김용판 의원은 이번 '가짜 돈다발 사진' 사건과 관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착잡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볼 때 '착잡하다'는 말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지사를 어떻게든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엮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던 국민의힘은 김용판 의원의 헛발질로 큰 역풍을 맞게 됐다. 이재명 지사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은 김 의원에 대해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는 물론 국회의원 제명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판사 출신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용판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면서 "죄명은 대한민국 의회의 수준을 땅바닥으로 끌어 내린 죄, 정치혐오감을 각인시킨 죄"라고 비판했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상실감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경찰 최고위 간부를 지낸 현직 국회의원이 조직폭력배의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미는 것을 넘어 허탈한 것이다.
'돈다발 사진'이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언론이나 사법기관이 아닌 국민이었다. 김용판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2018년 11월 21일 작성된 박씨의 페이스북 '돈다발 사진'이 게재됐고, 빠르게 유포됐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사실과 거짓의 검증이 가능한 시대다. 국민은 더는 꼼수 어린 흑색선전과 거짓에 속지 않는다. 전직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용판 의원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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