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H도 전관예우? 퇴직자 업체가 아파트 설계 '장악'

이지은 기자 입력 2021. 10. 20. 21:01 수정 2021. 10. 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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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몇년새 LH의 아파트 설계를 무더기로 따내서 수백억 원을 벌어들인 건축 사무소가 있습니다. LH 퇴직자가 차린 곳인데, 당시 설계를 맡긴 LH의 책임자는 지금 이 건축 사무소 대표로 가 있습니다. 현직이 전관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전관은 자리를 끌어주는 '부당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이지은 기자가 추적했습니다.

[기자]

경기도 파주시 운정동의 한 아파트 공사장입니다.

지난 2019년 9월, LH가 공모로 채택한 설계도면에 따라 짓고 있는 곳입니다.

5만7천 제곱미터 사업면적에 행복주택 1448세대가 들어섭니다.

설계 용역비로만 21억원을 썼습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공사장입니다.

이곳 역시 같은 해 용역비로 15억원을 들인 설계도면을 토대로 1810세대를 짓고 있는 곳입니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당시 차린 지 5년도 채 안된 A건축사무소가 설계했다는 겁니다.

업력이 길지 않은 건축사무소가 이런 큰 공사 설계를 잇따라 따내는 건 이례적이라는 게 건축업계의 평가입니다.

이 사무소는 LH 간부 박모 씨가 2010년대 초반 퇴직한 뒤 차렸습니다.

설계 공모를 발주한 곳은 LH B본부의 본부입니다.

당시 본부장은 김모 씨.

그런데 취재 결과 김씨는 지난해 퇴직한 뒤 A건축사무소 대표로 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설립자 박모 씨의 자리를 물려받은 겁니다.

A건축사무소에 일감을 몰아주고, 해당 업체로 자리를 옮긴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 대표는 2018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LH 임원으로 B본부의 총책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A건축사무소는 LH로부터 14건, 총 210억원 규모를 수주했습니다.

특히 이중 9건은 B본부가 직접 발주한 용역이었습니다.

해당 기간 B본부가 발주한 설계는 총 143건으로, 91개 건축사무소가 수주했습니다.

건축사무소 1곳당 평균 1.5건인데, A사무소는 평균의 6배를 수주한 겁니다.

해당 의혹에 대해 김 대표에 여러차례 연락했지만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LH 인사기록을 입수해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봤습니다.

2011년 같은 부서에서 처장과 부장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신영철/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 단장 : 업체들 하고 사이를 좋게 만들어 놓죠. 퇴직할 때쯤이 되면 타진을 하죠. 전관은 거의 스카우트니까. 여러 개 업체로부터 오퍼가 들어오죠. 제안이. 그럼 그중에 자기가 골라서 가는 경우들이 있죠.]

이렇게 A건축사무소는 7년 간 LH로부터 총 588억원 규모의 설계와 감리 용역을 따냈습니다.

이를 통해 LH 설계를 따낸 건축사무소 톱4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관 일감몰아주기가 의심되는 곳은 이 곳 뿐 아닙니다.

지난해 LH에서 계약을 따낸 상위 20곳 중 11곳이 LH 퇴직자가 대표나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유착 의혹이 나오는 건 LH 내부 직원이 설계 심사위원을 맡는 탓이 큽니다.

[안형준/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 : (LH 임원들을) 서로 모셔 가려 해요. 어떤 사람을 영입하느냐에 따라서 설계사무소의 수주가 올라가기도 하고, 별로 역할을 못 하기도 해서요. 내가 어느 회사에 있다, 뭐 그런 작업을 해요.]

LH는 8월에서야 뒤늦게 심사위원을 외부인사로 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공직자 윤리법의 빈틈도 문제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상 LH사장과 임원은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자본금이 10억원 이상, 연간 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의 업체로 제한됩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엔 별 제재 없이 이직이 가능한 겁니다.

[김상훈/의원 (국회 국토교통위) : 일감을 재직 중에 또 몰아주고 퇴직 후에 자리를 보장받는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한 것으로 옮길 직장을 예상하고 미리 여러 가지 편의를 도모해주는 그런 걸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영상디자인 : 조승우 / 인턴기자 : 정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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