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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클래식] 부산에서 본 해외 영화제 수상작들

김성현 기자 입력 2021. 10. 2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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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영화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는 김성현 기자의 ‘부산국제영화제 취재기’입니다.

베네치아 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수상작인 제인 캠피언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

칸·베네치아·베를린을 영화로 일주한 느낌이라고 할까. 15일까지 계속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른바 ‘3대 영화제’의 수상작들이 대거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부산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들은 올 하반기부터 극장과 넷플릭스 등을 통해서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영화의 바다’ 부산을 순례하는 영화광들 사이에 섞여서 나흘간 10편을 관람했다. 부산에서 본 해외 영화제 수상작들을 품격·파격·충격·진격의 4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살폈다.

◇'품격’의 베네치아

지난달 폐막한 베네치아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신의 손’(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과 은사자상을 받은 제인 캠피언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가 올해 부산을 찾았다. 제인 캠피언은 1993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피아노’로 국내에도 팬이 적지 않은 뉴질랜드 감독. 캠피언은 칸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기도 하다. 여성 서사에 강점을 보였던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 뜻밖에도 서부극을 선택했다.

영화는 거칠고 냉소적인 목장 주인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의 형제 갈등에서 출발한다. 초반 설정은 ‘에덴의 동쪽’, 중반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빼닮았다. 등장 인물의 내면에 도사린 비밀을 꼭꼭 감춰두는 전개 방식 때문에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말에서 주인공과 사건, 장르가 한꺼번에 뒤집히는 듯한 놀라운 순간이 기다린다. 제목은 구약성서 시편 22장 20절에서 가져왔다. 눈 덮인 산봉우리부터 광활한 평야까지 공들인 배경 묘사 덕분에 한 편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배급사인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 예정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티탄'

◇'파격’의 칸

프랑스 여성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은 올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캠피언에 이어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 감독이다. 교통사고로 티타늄 조각을 머리에 박은 채 살아가는 여성 연쇄 살인마의 이야기다. 당장 소녀의 뇌수술을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다.

“괴물을 받아들여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는 감독의 수상 소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연쇄 살인과 자해, 노출 장면이 초반부터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부산 첫 상영 직후 객석에서도 박수와 장탄식이 교차했다. 강력한 금속과 연약한 살갗 같은 대조적 이미지를 맞물려서 영화의 주동력으로 삼는 연출력은 인상적이다.

타인의 따스한 호의 덕분에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는 설정에서는 ‘레미제라블’이 떠오르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흐르는 가운데 죽음과 탄생을 맞물린 결말에는 종교적인 은유가 담겨 있다. 하지만 전통적 이야기 흐름에 익숙한 관객들은 자칫 심신불안을 호소할 우려도 있다. 걸작과 졸작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괴작(怪作). ‘티탄’은 다음달 극장 개봉한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대상) 수상작인 '배드 럭 뱅잉'. 부산국제영화제.

◇'충격’의 베를린

지난 3월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대상) 수상작인 ‘배드 럭 뱅잉’(감독 라두 주데)도 부산에서 첫 선을 보였다. 안내 자막이 올라가기도 전부터 부부의 침실 장면을 1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포착한 도입부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주인공인 루마니아 여교사 부부가 장난 삼아 촬영한 동영상이 온라인 유출되는 바람에 여교사는 ‘포르노 선생’ ‘음란 마귀’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얻는다.

루마니아의 주데 감독은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도입부 설정을 통해서 차우셰스쿠의 공산 독재가 남긴 유산에 대해 통렬한 야유를 퍼붓는다. 소련에 굴종했던 현대사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관료주의와 부패, 빈부 격차와 인종주의를 풍자한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 파괴’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 사태 수습을 위해 분주하게 걸어다니는 여교사를 비추던 카메라는 슬그머니 피사체에서 빠져나와 수도 부쿠레슈티의 거리를 찍는다. 허구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코로나 직후 마스크를 쓴 루마니아 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 어쩌면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의 잿빛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선댄스 영화제 3관왕에 오른 영화 '하이브'. 부산국제영화제.

◇'진격’의 선댄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미나리’가 돌풍을 일으켰던 진원지가 선댄스 영화제다.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2관왕(심사위원 대상·관객상)에 오른 뒤 아카데미까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선댄스는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설립한 미국 최고의 독립 영화제. 레드포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자신이 맡았던 ‘선댄스 키드’ 역에서 영화제의 이름을 가져왔다.

지난해 ‘미나리’에 이어 올해 선댄스 수상작들도 부산에 초청 받았다. 옛 유고 연방이었던 코소보의 영화 ‘하이브’(감독 블레르타 바숄리)는 지난 2월 선댄스 3관왕(심사위원 대상·감독상·관객상)에 올랐다.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코소보의 실화에 바탕한 작품. 남편의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시아버지와 두 아이를 보살피는 여인의 신산(辛酸)한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과 가부장제의 이중적 굴레에 짓눌린 수동적 희생자로 여성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양봉을 하다가 벌에 쏘이면서도 자립을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의 억척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감동을 자아낸다. 그래서 제목도 ‘벌집(Hive)’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기생충’이 수상한 아카데미 국제극영화상의 내년 후보작에 올라 있다. 과연 ‘하이브’는 ‘기생충’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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