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경제포커스] 집값 치솟는데 물가는 안 올랐다고?

나지홍 기자 입력 2021. 10. 21. 03:02 수정 2021. 10. 21. 11:17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집값 빼고 전월세만 반영하니
현실과 따로 노는 물가 통계
미국·일본 이어 유럽연합도
自家주거비 물가에 넣기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가계 살림에서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지출은 죄다 주거비 관련이다. 내 돈을 벌기 시작해 부모로부터 독립한 청년은 혼자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전세나 월세를 구해야 한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저축이 쌓이면 이번엔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에 나선다. 모두 큰돈이 들어가는데, 이제껏 모아놓은 돈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세든 내 집 마련이든 은행 등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씀씀이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을 한 뒤 대출금을 다 갚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매년 7월과 9월 두 차례 재산세도 내야 한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연말에 종합부동산세도 내야 한다. 또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다시 저축하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 평생 빚 갚는 시대,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가불(假拂) 인생’ 시대가 한국에도 찾아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자가건 전월세건 관계없이 모든 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급증했다. 시민단체 경실련에 따르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경우 서울 아파트를 사는 데 36년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엔 21년이었는데 15년이 늘어난 것이다. 만일 월급의 30%를 저축하면 118년을 모아야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소비자물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달 소비자물가를 조사해 발표하는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주거비의 비율은 9.7%로 10%가 채 안 된다. 다른 품목들의 물가가 똑같다고 가정할 경우 주거비가 10% 올라도 물가상승률이 0.97%로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물가에서 주거비의 비율은 주요 국들에 비해 훨씬 낮다. 미국은 이 비율이 32%이고, 영국은 26%, 일본은 18%다.

주거비 비율이 낮은 것은 통계청이 주거비를 계산할 때 집값은 빼놓고 전월세값 변동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주택을 사는 데 들어간 지출은 소비가 아니라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에 반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맞지 않는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은 자가주거비라는 이름으로 집값을 물가에 반영한다. 자가 거주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빌려줄 경우 얼마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 상승률을 계산하는 식이다.

주요 국 가운데 우리보다 주거비 비율이 낮은 곳은 EU(유럽연합, 6.5%) 정도다. 하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지난해 “가족과 친구 등 누구든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6.5%는 너무 낮다”고 한 이후 EU도 자가 주거비 반영을 준비하고 있다.

집값을 물가에 반영할 경우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2%대가 아니라 4~5%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만약 진작 도입됐다면 물가 안정을 최고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이 역사상 유례 없는 초저금리를 이렇게 오래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고, 부동산 시장 급등세도 누그러졌을 수 있다.

한은은 이제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것 같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주 국정감사에서 “자가 주거비를 빼놓고 소비자 물가지수를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물가 조사 기관인 통계청이다. 이제 통계청이 답할 차례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