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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한다면서.. 6200억 배출권 시장 규제투성이

김은정 기자 입력 2021. 10.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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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참여 684개 업체뿐.. 정부 규제로 거래 경직

정부가 2050년 탄소 중립(탄소 배출량과 감축량이 같아 증가율 제로) 달성을 내걸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강화하면서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활성화가 중요해졌지만, 운영 방식 등에서 후진적인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출범 첫해 139억원이 거래된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은 지난해 누적 거래 대금 6200억원을 돌파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파생상품을 개발해서 ‘탄소 금융’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유럽 등과 달리 배출권을 할당받는 684개 기업들만 참여하는 현물 시장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배출권을 사고팔거나 비축해두는 데 대한 제약도 많아서 높은 가격 변동성과 수급 불균형 등이 해결되지 않는 등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적정한 탄소배출권을 구매, 보유, 거래해 기업 활동 위축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도 선물 등 파생상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선진국 이상으로 높은데 배출권 거래는 굉장히 규제가 많아 이름만 ‘시장’일 뿐 시장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 등락 커서 거래 확대 방해

가격 등락이 너무 커서 거래 확대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올 초 1톤당 2만3000원이었던 탄소배출권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기업 활동 감소로 물량이 남아돌자 지난 6월에는 1만500원까지 폭락했다. 그런데 이달 들어서는 3만원대를 웃돌고 있다. 4개월 만에 가격이 3배 가까이 뛰었다. 시장 참여자가 적다보니 수급 불균형이 크고 가격이 널뛰는 일이 잦아진다. 정부의 시장안정화 조치(최저거래가 설정)는 올해 4월과 6월 두 번이나 발동됐다. 탄소배출권 리서치 전문기관 NAMU EnR(대표 김태선)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4월 사이 탄소배출권의 연간 가격 변동성(32.4%)은 같은 기간 코스피200 변동성(17.1%)의 2배에 달한다.

◇정부 지침 오락가락

탄소배출권 가격이 출렁거리니 참여 기업들은 가능한 한 배출권을 많이 사두거나 매년 남은 배출권을 다음 해로 이월, 비축하고 싶어 하지만,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예컨대 배출권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매월 실시하는 탄소배출권 경매로 배출권을 사들이려 해도 실제 구매 가능 물량은 업체당 입찰한 물량의 최대 30%에 불과하다. 돈이 있어도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없다. 배출권이 모자라면 배출량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배출권 이월 규제도 문제가 된다. 시장 출범 초기에는 EU처럼 무제한 이월을 허용했지만, 거래 매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2017년부터는 일정량을 팔아야 이월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 기준은 매년 변경되는데 올해는 판매한 수량의 2배까지만 이월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으로 애써 배출권을 남겨 여유분을 넉넉히 가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이월의 반대 개념으로 다음 해 배출권을 당겨 쓰는 ‘차입’이 있는데 기준이 매년 바뀌고 들쭉날쭉하다. 2016년에는 실제 배출한 탄소량의 20%까지였는데, 2018년 15%로 줄었고, 2019년에는 전년의 절반만 가능하도록 했다. 올해는 15% 이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수시로 정부 지침이 바뀌다보니 배출권 시장 상황을 예측해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며 “정부는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개입하는 거라지만 지나친 것 같다”고 했다. 이러니 기업들은 가급적 탄소배출권을 팔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이로 인한 ‘매물 품귀’ 현상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기업들 “탄소 중립으로 배출권 규제 강해질까 걱정”

배출권 할당 기업들은 탄소 중립 추진으로 인한 탄소배출권 할당 축소를 걱정하고 있다. 산업 부문 감축 목표가 기존 6.4%에서 14.5%로 2배 이상 높아져 할당량 감축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화학 업체 관계자는 “과태료를 피하기 위해 가동률을 줄이는 곳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기업 부담 측면에서나 배출권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서도 사전 할당량은 변경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탄소 배출권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반영해 매년 기업별로 할당하는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양이다. 부족분이나 잉여분을 한국거래소나 장외 시장에서 다른 기업과 거래할 수 있다. 실제 배출한 탄소량만큼의 배출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은 초과분 가격의 3배 과징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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