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만물상] 50代 간병 우울증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 10. 2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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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나이 50줄에 들어섰을 때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나중엔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가끔 발톱을 깎아 드릴 때면 기억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듯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노모 품에 안긴 초로의 사내가 눈물 쏟으며 시를 썼다.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 드린다/(…)/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치매 앓는 고령 부모와 그런 부모를 돌보는 50대 이상 초로 자녀는 흔한 풍경이 아니었다. 많은 부모가 고희를 맞기 전에 자식 곁을 떠났다. 치매는 드물었고 자리보전도 오래 하지 않았다. 더는 아니다. 20여 년 전 필자의 아버지가 환갑을 맞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축하한다며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 춤을 춰야 한다”고 권했다.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자식에게 업히라니, 내가 노인이란 말인가.”

▶이제 60대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대신 노년은 늦게 찾아오고 오래 지속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남자 80세, 여자 86세다. 자식 관점에서 보면 많은 한국인이 50대 이후 부모와 사별한다는 의미다. 간병 기간도 늘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거동 불편한 부모를 임종 때까지 간병하는 기간이 평균 5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노환으로 인한 장기 와병과 연명 치료에 지친 50대 자녀가 간병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연이 어제 조선닷컴에 소개됐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요즘 50대 후반 60대 초반 연령대의 회식 자리 최고 화제는 노부모 간병이다. 식사할 힘도 없어 콧줄로 음식을 삼키는 아버지 어머니 얘기를 나누다가 함께 목이 멘다. 길에서 ‘요양’이란 간판만 봐도 눈길이 간다는 경험담에 너도나도 맞장구친다.

▶장수(長壽)는 우리 사회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대부분 노인이 집에서 임종을 맞았지만, 이젠 90% 이상이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요양원 수십 개가 몰려 있는 요양원 마을도 등장했다. 그런 식으로 부모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녀도 못 할 노릇인데 딱히 해결책이 없다. 시중에 간병 정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장수가 진정한 축복이 되기 위해서라도 생명 윤리와 제도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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