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은 스마트폰만 보는데"..동대문·천호동 완구거리 가보니 [르포]
21일 오후 3시께 찾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 문구·완구 거리. 이곳에서 문구·완구점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한적한 거리를 둘러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A씨는 "천호동 장난감 거리, 이런 건 다 옛날 말 된 지 오래"라며 "빚내서 빚 갚고, 다시 빚내서 빚 갚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게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지 오래됐는데 그만두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천호동 문구·완구거리는 서울지하철 5·8호선 천호역 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다. 지난 1980년대부터 조성된 이 상권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였다.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문구류와 완구류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일 둘러본 이곳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240~250m 남짓한 길목에 남아있는 문구·완구상점은 10곳이 채 되지 않아 보였고, 그마저도 두 곳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길목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3~4명 남짓이었다.
자녀나 조카를 위해 장난감을 사가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서를 복사하거나 볼펜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만이 뜨문뜨문 가게로 들어설 뿐이었다. 인근에 세워진 '천호 문구·완구거리' 표지판이 아니라면 이곳이 어떤 상권인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문구류를 사러 한 가게를 들른 30대 소비자 B씨는 "동네 문방구고 또 저렴하기도 하니까 간단한 것은 여기서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당장 애들 장난감이라 그러면 아무래도 대형마트에서 사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또 애들 흥미 따라 중고 거래도 괜찮고"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날 저녁 시간대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도 천호동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통상 가게들이 닫는 시간은 오후 6시이지만, 일부 가게들은 이미 오후 5시부터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신동 문구·완구거리는 천호동보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지난 1960년대부터 상권이 들어섰지만, 이커머스 시장과 대형 유통업체를 이겨낼 방법이 좀처럼 없었다. 상인들은 2000년대 들어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50대 소상공인 C씨는 "동네 마실 나온 분들이 가끔 어린이들 장난감을 몇 개 사기는 한다"며 "그나마 매출은 문구류고, 대부분 온라인 주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C씨는 "물가(상승률)까지 안 따져봐도 매출은 10년 전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예전에는 그래도 회사 같은 곳에서 사무용품 단체 주문도 있었는데 요샌 그런 것도 없다"고 말했다. C씨는 "물건을 떼오면 다 돈이라, 있는 것만 팔고 정리할까 생각 중"이라며 "코로나19도 코로나19인데 이젠 이런 상품들이 더 먹히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때 단골이었다는 60대 인근 주민 D씨는 "우리 애들(자녀) 장난감 살 때 자주 왔었는데 손주들은 스마트폰만 고집하더라"라고 운을 뗐다. D씨는 이어 "여기도 상권 곧 사라지겠지, 이제. 이 사람(자영업자)들이 살아날 방법이 없잖아"라며 돌아섰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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