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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병수의마음치유] 원포인트 레슨

- 입력 2021. 10. 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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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골프를 안 쳤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종종 쳤지만 개업한 후 5년 넘게 골프채는 베란다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며칠 전,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내가 정신과 수련을 받을 때 지도교수님은 심혼을 다루는 정신치료를 단기간에 종결되는 코칭이나 카운슬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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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정신치료 과정 오랜 시간 걸려
요즘 같은 위기시대 '쪽집게 상담'도 필요
한동안 골프를 안 쳤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종종 쳤지만 개업한 후 5년 넘게 골프채는 베란다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거리두기가 1년이 넘어가고 골프 붐이 일자 예전의 그 느낌이 그리워졌다. 골프백을 꺼내 10년 전에 산 드라이버를 오랜만에 잡았더니 골프공을 때리던 과거의 손맛이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석 달 전부터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 짬이 날 때마다 연습장에서 아이언을 휘두르며 연습했지만 쉬이 늘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레슨도 찾아보고 내 스윙을 녹화해서 스스로 분석도 해봤지만 구질이 개선되지 않았다. 혼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실력은 향상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며칠 전,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어깨 턴이 잘 안 되고 왼쪽 무릎이 흔들린다는 코치의 지적을 받고 교정했더니 드라이버 비거리가 늘었다. ‘아,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는 걸 혼자서 끙끙거렸다니!’ 진즉에 레슨을 받았더라면 금방 나아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신과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들도 내게 원포인트 레슨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닐까, 라고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해결책을 한 번의 상담에서 얻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정신과 수련을 받을 때 지도교수님은 심혼을 다루는 정신치료를 단기간에 종결되는 코칭이나 카운슬링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꿈을 분석하고 과거의 기억과 연상을 풀어내고 그림자와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며 자기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신치료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다.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은 환자를 자주 만나 상담해야 효과적이다.

카를 융의 저서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그는 일주일에 최대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환자를 봐야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온다고 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의 상담 회기를 가져야 한다고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임상 현장에서는 자주 상담하고 오랜 기간 동안 반복되는 전통적인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이보다 삶에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기간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변곡점을 슬기롭게 뚫고 나가기 위한 조력자를 구하려고 의사를 찾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정신과 외래를 처음 방문한 환자의 20∼50%는 이후에 다시 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정신건강 서비스는 일회의 상담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건전한 상식이나 충고를 바라는 환자에게는 단 한 번의 상담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자로서 내 자신은 고전적인 정신치료라는 원형에 묶여 짧은 시간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지나온 경험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기만 하고, 실용적인 해답도 없이 알쏭달쏭한 정신분석적 관념만 늘어놓는 상담이라면, 그건 지적 게임을 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곤경에 처한 인간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사상과 지식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황금 같은 것이라 해도 배고픈 이의 허기는 못 채워주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한 건 아닐까.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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