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1등' 써놓으니 더 잘팔리네, 밴드왜건 효과

김영준 경제·경영 작가 2021. 10.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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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기업들 '1등 마케팅'

카메라 라이벌인 캐논과 소니는 한국 DSLR 카메라 시장에서 누가 점유율 1위인지를 놓고 지난 2016년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소니는 “오픈마켓 판매량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1위”라고 주장했고, 캐논은 “오픈마켓 판매량 데이터는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이런 식의 기업들 간 1위 다툼은 매우 흔하다. A사가 “우리가 점유율 1위”라고 하면 경쟁사인 B사가 “A사 주장은 판매량 기준이며, 매출액 기준으로는 우리가 1위”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와인처럼 종류가 다양하고 선택이 까다로운 상품의 경우 소비자들은 많이 팔린 상품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밴드왜건 효과 때문에 기업들은 치열한 1등 싸움을 벌인다. /연합뉴스

이런 기업들 간 1위 다툼은 외부인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치한 자존심 싸움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업들이 1등에 목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밴드웨건 효과(1위 쏠림 현상)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와인에 매우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마트나 와인 전문점의 수많은 와인 중에서 당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을 것이다. 포도의 품종, 생산 국가와 지역, 와이너리와 테루아의 특징 등 당신이 아는 정보와 경험을 동원하여 와인의 가치를 평가하고 책정된 가격이 가치에 적정한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와인에 대해 잘 모른다면 와인 코너 앞에 서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없다. 국가별로 분류는 돼 있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종류도 너무 많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가격표의 숫자뿐. 직원은 “찾으시는 게 있냐”고 묻는데, 사실 내가 뭘 찾는지도 모르니 패닉에 빠진다.

이처럼 상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경험과 정보가 없는 상태라면 소비자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 자체에서 곤욕을 치른다. 이때 다른 소비자들이 내린 선택은 이 곤욕을 벗어나게 해줄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적어도 많은 소비자가 구매한 상품이니 검증된 훌륭한 상품일 것이며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 가치와는 다를 수 있다. 독일 판매 1위 맥주가 독일에서 팔리는 가장 훌륭한 맥주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등장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평점과 리뷰는 선택의 홍수 시대에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구매 선택을 용이하게 하려는 시도 중 하나다. 하지만 평점의 상향 평준화와 수없이 쏟아지는 리뷰가 오히려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1등’ 문구를 보고 제품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위 다툼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기업들 나름대로 치열한 생존 경쟁의 연장선이다.

밴드웨건 효과는 소비나 투표 등에서 대중의 대세 편승 현상을 비판적으로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용어다.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정보 탐색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다. 훌륭한 물건을 사는 게 목적이라면 많은 정보와 경험을 쌓은 후 구매에 나서는 게 좋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는 상품을 사는 게 목적이라면 남들이 많이 사는 물건을 사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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