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70도 견디는 부품 37만개… 국내 300개 기업의 집념 담겨

고흥/유지한 기자 2021. 10. 2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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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 12년 연구로 탄생한 ‘극한 기술’ 총결집체

한국이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화염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 수증기가 구름처럼 발사대를 덮은 가운데 누리호는 땅을 뒤흔드는 굉음과 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갔다. 누리호는 1-2단 분리에 차례로 성공한 뒤 발사 16분 7초 만에 지상 700㎞ 고도에 도달했다. 하지만 위성을 대신한 알루미늄 모사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아쉽게 실패했다.

인공위성을 자력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는 건 다음 발사로 미뤄졌지만, 한국은 이번 발사로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술적 성취를 거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300여 민간기업이 참여한 개발진은 지난 11년 7개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 부품 수의 18배나 되는 37만개 부품을 조립해 15층 건물 높이의 로켓을 만들었다. 방효충 카이스트는 교수는 “우주발사체는 극저온·극고온 환경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누리호는 극한의 기술적 난제를 극복한 결정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연구동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가 발사되고 있다. 2021.10.21. /뉴시스

◇'로켓 심장’ 만든 1만8290초의 시험

3단 발사체 누리호의 핵심은 ‘로켓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이다. 이번에는 3단 모두 우리 기술로 개발했다. 2단 발사체였던 나로호(2013년 발사 성공) 때는 중력을 이기는 힘을 내는 핵심인 1단은 러시아 로켓을 썼고 우리는 고체엔진을 쓰는 2단만 개발했다.

특히 누리호 1단에서 액체엔진 4기를 묶는 기술(클러스터링)은 난도가 가장 높은 기술로 꼽힌다. 75t급 엔진 4기가 하나의 300t급 엔진처럼 한 치 오차 없이 같이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백 개의 밸브가 0.01초 단위로 정교하게 엔진을 제어한다. 엔진 하나라도 추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발사체는 기울어지거나 추락할 수 있다.

75t급 엔진은 184회 1만8290초의 시험을 거쳤고, 33기의 시험 엔진이 쓰였다. 엔진 개발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참여했다. 엔진에서 분출되는 섭씨 3300도의 불꽃을 보기 위해 연구진들은 밤을 새우며 시험했다고 한다. 한영민 항공우주연구원 엔진개발부장은 “엔진 여러 개를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 덕분에 한국은 다양한 추진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연료와 산화제(연료 연소를 돕는 물질)를 담는 탱크도 극한의 과학이 적용됐다. 가장 큰 산화제 탱크는 높이 10m, 지름 3.5m이지만 두께는 2㎜에 불과하다. 위성을 많이 실으려면 발사체 자체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얇고 가벼우면서도 강해야 한다. 대기압의 6배 정도인 내부 압력과 비행 중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견딜 수 있게 제작됐다.

발사체 탱크의 주성분은 알루미늄이다. 열 때문에 뒤틀리는 성질이 있어 이를 용접하는 기술은 고난도다. 수백 가지의 공정 중 하나에서라도 작은 흠집이 나면 폐기하고 10개월의 제작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항우연 이상훈 연구원은 “조선 강국 한국은 세계 최고의 용접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급 보안’ 페어링 분리 기술도 확보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 실패를 불렀던 페어링 분리 기술도 독자 확보했다. 페어링은 발사체 최상단에 한 쌍으로 된 위성 보호판이다. 발사 때 발생하는 150데시벨(dB)의 굉음과 대기 마찰 열로부터 위성을 보호하는데, 정확한 시점에 양쪽으로 갈라지며 분리돼야 한다. 로켓이 단마다 잘 분리돼도 최종적으로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으면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없다. 페어링 분리 기술은 우주 선진국들도 특급 보안으로 관리한다.

누리호가 땅을 박차고 이륙할 수 있게 받쳐준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주축이 돼 2016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국산화했다. 나로호 때 발사대는 러시아로부터 기본 도면을 입수해 만들었다.

이번 발사대에는 나로호 땐 없었던 48m 높이 엄빌리컬 타워가 있었다. 발사체 옆에서 전기와 추진제를 공급하는 일종의 탯줄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나로호 때는 추진제와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가 발사체 아래에 연결돼 있었다. 발사체를 잡아주는 지상 고정장치는 엔진 점화 이후 300t의 추력에 도달할 때까지 안전하게 잡아주다 부드럽게 놔줬다. 4개의 고정장치가 오차 없이 동시에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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