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속옷 모델은 막으면서 유튜브 속옷 룩북엔 속수무책 방심위

채민석 기자 2021. 10. 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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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속옷 착용 모델'도 금지
"방심위, 플랫폼에 올라오는 음란성 영상 단속에 사실상 손 떼"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키우는 정모(42)씨는 최근 아이의 유튜브 영상 시청 목록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룩북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들이 유사 성인물 수준의 선정적인 동영상들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옷을 탈·착하는 과정도 패션의 일부일 수 있으니, 속옷을 입고 나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란제리 등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이를 갈아입는 영상까지 가감 없이 노출된다면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룩북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속옷을 입고 옷을 탈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선정적인 내용의 영상이 대부분이다. /유튜브 캡처

‘룩북’은 패션 관련 제품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SNS에서는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용자들을 위해 콘텐츠 제작자가 직접 옷을 입어보며 리뷰를 하는 것으로 통한다.

그러나 최근 유튜브 등 플랫폼에 ‘룩북’을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선정적인 영상들이 노출되고 있다. 일반적인 룩북은 패션을 소개하기 위해 탈착의를 하는 과정에서 속옷을 노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영상은 아예 ‘속옷 룩북’ 등의 제목으로 업로드돼 성인용 속옷이나 이벤트용 특수 의상을 리뷰하기도 한다. 한 유튜브 영상은 카메라를 등지고 속옷을 갈아입는 장면까지 가감 없이 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선정적인 영상들 중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시청이 가능한 영상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유튜브 키즈를 이용하는 저연령대나 성인을 제외한 연령대의 청소년들도 유해한 영상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유튜브는 이런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유튜브 측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서 사이트 내 허용되는 콘텐츠들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으며,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콘텐츠는 삭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을 뿐이다.

다른 SNS와 포털사이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네이버와 다음 검색창에 ‘룩북’을 검색하면 동영상 섹션 1페이지에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섬네일들이 노출된다. 또한 10대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틱톡’의 경우, 검색창에 ‘룩북’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변형된 음란 표현들이 노출된다. 해당 검색어로 검색하면 선정적인 영상이 다수 검색되기도 했다.

틱톡 측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해당 검색어와 영상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즉시 삭제 조치했다”며 “틱톡은 가이드라인 위반 콘텐츠나 선정적 키워드 등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바로 신고를 받고 노출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재 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TV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속옷을 착용한 모델이 출연해서는 안된다. 또한 속옷을 착용한 사진이나 패션쇼 장면, 자료화면 등을 쓸 수도 없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현대홈쇼핑이 속옷 착용 사진의 사용이 제한되는 시간대에 속옷만 입은 모델의 사진을 방송해 방심위로부터 ‘의견진술 청취’ 제재를 받은 바 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SNS 틱톡에서 속옷 룩북을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틱톡 캡처

하지만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이런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방송의 경우 상품소개 및 판매 규정에 관한 심의에 따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속옷을 착용한 모델이 나올 수 없다”며 “방송과 달리 통신은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기 때문에 불법 정보 등 명백히 법에서 금지하거나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된 사안이 아니면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과 통신은 심의 기준이 달라서 유튜브나 포털의 경우 방송심의규정을 적용하기 힘들다”며 “일반적인 속옷은 선정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성인용품샵 등에서 판매하는 성기 부분이 노출되는 성인용 속옷을 입거나 음란한 자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해 매체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방심위는 지난해 음란성 영상 5만건 정도를 적발하는 등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사각지대인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음란성 영상이 판을 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송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심위가 정작 이용자가 많고 10대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방심위는 유튜브 관련 가이드라인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며 “이미 온라인 플랫폼들의 규모가 상당히 커진 상황인데 이제 와서 단속이나 규제를 하려니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해 방심위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라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음란물이나 유해 매체를 단속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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