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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고기 덕후에 당뇨? 그를 진짜 괴롭힌 병은 따로 있다"

유성운 입력 2021. 10. 22. 13:05 수정 2021. 10. 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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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성군의 대명사 세종은 과거엔 근엄한 이미지로 그려져 왔지만, 최근엔 한 인간으로서의 이미지도 재발견되는 중이다.
고기를 지나치게 좋아했다는 것이나 운동을 싫어했다는 것이 그렇다. 체구도 비만이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들도 곳곳에 이런 흔적들을 남겼다.

"주상(세종)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肥重)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 또 문과 무에 어느 하나를 편벽되이 폐할 수는 없은즉, 나는(태종) 장차 주상과 더불어 무사(武事)를 강습하려 한다." (『세종실록』 즉위년 10월 9일)

그래서 세종이 성인병 환자였으며, 비만과 당뇨 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이 통설처럼 알려져 있다. 그를 극심하게 괴롭힌 안질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발간한 이지환 작가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 작가는 "세종은 당뇨병을 앓은 것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며 "그를 괴롭힌 다른 증상도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종은 통상적으로 알려진 대로 고기만 편식하면서 운동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재직 중인 정형외과 전문의다. 21일 이 작가와 통화해 더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낸 정형외과 전문의 이지환 작가 [사진 이지환 작가]

Q : 세종이 육식을 즐기고 운동을 하지 않아 당뇨 같은 성인병에 시달렸다고 알려져 있다.
A : 세종이 당뇨로 고생했을 것이라는 근거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안구질환이다. 그런데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통증이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명해서 위험한 병이다. 그런데 세종은 안질에 대한 고통을 여러 차례 호소했고, 또 증세가 좋아지고 나빠지길 반복했다. 이것은 당뇨병성 망막병증 증상과 다르다. 또 "살이 빠져서 전에 매던 허리띠가 헐거워졌다"라거나 "물을 자주 마시는 병이 있다"고 해서 당뇨와 연결하기도 하는데, 한국의 당뇨병 환자들은 콩팥(신장)이 망가져 신체 노폐물이 쌓이기 때문에 몸이 붓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세종은 이런 증상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당뇨병 때문에 운동을 못 할 이유도 없다.

Q : 그러면 세종을 괴롭힌 병명은 뭔가
A : 『실록』에서 세종의 통증은 50회가량 언급된다. 20대엔 무릎, 30대엔 허리, 40대엔 안질에 대한 통증을 많이 호소했다. 가장 많은 게 눈병(12회), 그다음이 허리(6회)다. 젊은 시절부터 사신에게 예를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 모든 증상은 강직성 척추염과 연결된다. 척추에 염증이 생겨 허리뼈가 대나무처럼 뻣뻣해지는 병인데, 다른 관절과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 허리 디스크 환자와는 또 다르다.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서 등을 구부리고 펴기가 어려워진다. 또 강직성 척추염의 가장 흔한 합병증은 포도막염이다. 이것은 눈에 통증을 유발하는데 어느 날은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아프다가 어떤 때는 씻은 듯이 좋아진다. 그 외에 염증성 장병증이나 피부병, 발목 통증 등이 합병증으로 생길 수 있다.

[자료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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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런 분석은 『세종실록』의 내용을 근거로 한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에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예(禮)는 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더니, 지금 여기에 와서는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 (『세종실록』 17년 4월 1일)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는 걷기에 어려웠다. 온천에서 목욕한 뒤에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더니, 어젯밤에 이르러서는 본초의 잔 주석을 펴놓고 보았는데도 또한 볼 만하였다." (『세종실록』 23년 4월 4일)

Q : 세종이 탄 가마가 부서져 장영실이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고 추정했는데?
A : 가마가 부서진 것은 맞을 것이다. 다만 그 가마에 세종은 타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강직성 척추염을 수십 년 앓았던 세종의 허리는 대나무 모양으로 뻣뻣하게 붙어 깨지기 쉬운 상태였다. 뼈의 탄성은 줄고 충격을 완화하는 디스크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약한 충격에도 허리뼈가 부러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1m 높이의 가마에 앉은 사람이 땅에 떨어지면 그 충격은 바로 척추로 전달된다. 세종의 허리는 이를 견딜 수 없다. 최소 3주는 요양해야 한다. 그런데 5일 뒤 세종은 온천에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시점상 가마에 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장영실의 최후를 전하는 『세종실록』의 기사는 이렇게만 언급하고 있다.
"대호군(大護軍) 장영실이 안여(安輿·임금의 가마)를 감조하였는데, 견실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24년 3월 16일)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장영실이 만든 가마가 무너진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Q : 의사로서 세종의 질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
A : 의대 6년을 마치고 자격고시 시험을 준비하다가 착안하게 됐다. 내분비에서 당뇨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당뇨의 중요한 합병증에 대해 공부해보니 내가 알고 있던 세종의 증상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 이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됐고, 1년간『세종실록』을 꼼꼼히 읽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이 작가가 세종의 허리 증세에 대해 다룬 논문 (
「Did Sejong the Great have ankylosing spondylitis? The oldest documented case of ankylosingspondylitis」

)은 지난해 10월 SCI급 국제 학술지인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류마틱 디지즈(International journal of the reumaticdiseases)'에 소개됐다.

2020년 10월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류마틱 디지즈'에 소개됐된 이지환 작가의 세종 관련 논문 [자료 이재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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