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23] 포란반(抱卵斑)
돌 지난 아기를 키우는 후배 집에 갔다가 곰돌이 인형을 보았다. 특이하게 아기가 인형을 곰돌이 삼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낡은 인형은 후배가 30년 전,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애착 인형이었다. 정말 곰돌이 삼촌이라 할 오랜 역사의 증인이었다. 만약 이 아기가 자라 또 아이를 낳는다면 곰돌이 삼촌은 곰돌이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육아 설루션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출연자들의 힘든 육아 사연에 대한 처방을 보면 그게 꼭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언젠가 소설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고 쓴 적이 있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렇다. 대개 약자는 부모다.
새들이 알을 품는 걸 ‘포란’이라고 한다. 또 포란 중인 새의 가슴과 배 깃털이 빠진 부분을 포란반(抱卵斑)이라 부른다. ‘포란반’은 새끼를 더 따뜻하게 품으려는 어미 새의 본능으로, 맨살에는 혈관이 많아 보온이 더 잘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새들은 더 따뜻하게 알을 품기 위해 자기 깃털을 부리로 뽑아낸다.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안에서 쪼는 것을 ‘줄’,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하는데, 줄탁동시는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 관계와 닮았다.
아이 하나를 위해 부모, 양가 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까지 지갑을 연다는 ‘에이트 포켓 시대’다. 하지만 아이가 귀한 시대의 문제는 관심이 아닌 간섭, 사랑이 아닌 집착, 적당함이 아닌 과도함이다. 육아 설루션이 대부분 ‘기다려주기’ ‘믿어주기’라는 게 반증이기도 하다. 이때 “자식은 내 곁에 잠시 머무는 귀한 손님”이라는 말은 새겨볼 만하다. ‘온전한 어른’이란 둥지에서 떠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떠날 줄 알면서도 몸에 난 털까지 기꺼이 뽑아 키우는 애틋함.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늘 더 눈물겹고 웅장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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