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일보

배임 빼고 유동규 기소.. 수사팀 검사들 "이러다 큰일, 차라리 특검하자"

이정구 기자 입력 2021. 10. 23. 03:26 수정 2021. 10. 24. 09:43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검찰 내부서도 "의도적 부실수사"
계좌추적 내용도 따지지 않고
녹취록 의존해 뇌물 조사만 집중
검찰, 유동규에 '이익환수 조항 삭제' 거의 추궁 안했다
성남 대장동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답보 상태인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검찰 마크가 붙은 유리를 청소하고 있다. 2021.10.22 /연합뉴스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기소하면서 유씨 구속영장에 적시했던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를 제외한 것을 두고 22일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이재명 살리기용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수사팀 검사들 사이에서도 “특검으로 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수사팀 검사는 주변에 고충을 토로하며 “이런 식의 수사가 계속되면 결국 탈이 날 것이다. 빨리 특검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중앙지검 지휘부가 대장동 의혹의 한 축인 배임 혐의 규명에 소극적이라는 정황이 적지 않다. 수사팀은 전날 유씨 구속기소를 앞두고 막바지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유씨에게 배임 혐의에 대한 질문은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에게 계좌 추적 내용을 제시한 조사도 없었다고 한다.

수사팀은 특히 유씨가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화천대유 등 민간 사업자에게 막대한 수익을 보장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유씨를 상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초과 이익 환수 조항 삭제’ 문제는 대장동 특혜 의혹의 핵심이자, 이재명 경기지사(당시 성남시장)와 연결될 수도 있는 ‘스모킹건’으로 꼽힌다.

“이재명 살리기 수사냐” 野, 대검 항의 방문 - 국민의힘 김기현(앞줄 오른쪽) 원내대표와 당 소속 의원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방문, 박성진(앞줄 왼쪽) 대검 차장에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은 전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으나 의혹 핵심 쟁점인 배임 혐의는 제외했다. /이덕훈 기자

대신 수사팀은 정영학(천화동인 5호 소유주) 회계사 등이 제출한 ‘대화 녹취록’을 제시하며 ‘700억원 약정’ 등 유씨의 뇌물 수수 혐의 보강에 집중했다고 한다. 검찰의 한 간부는 “이 사건에서 배임과 뇌물수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둘 중 한쪽만 수사했다는 것은 특정인(이 지사)을 봐주기 위해서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또한 20명 정도의 검사가 투입된 전담수사팀의 내부 업무 분담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회계사 자격이 있거나 자금 추적 능력을 인정받아 파견받은 검사들은 곽상도 의원과 유동규씨를 겨누는 ‘뇌물 수사팀’에 주로 투입하고, 여권이 민감하게 여기는 배임 수사, 계좌 추적은 송철호 울산시장의 사위인 김영준 부부장검사 등 기존 중앙지검 인력이 주도하게 해 내부적으로 ‘벽’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수사팀에서 몇 안 되는 특수통으로 평가받은 A 부부장검사는 지휘부 방침에 이견을 제시했다가 다른 사건 수사를 병행하는 형태로 사실상 수사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검찰 외부의 비판도 이어졌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유동규를 기소하며 배임 혐의를 뺀 것은 공소권 남용 수준”이라며 “검찰이 ‘이재명 일병 구하기’에 총대 멘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대검을 항의 방문해 “이재명 살리려는 정치 검찰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전담수사팀 내부에서 특검 필요성을 언급하는 검사들이 나오는 것은 실제 중앙지검 수뇌부의 석연치 않은 지휘가 ‘수사 실패’로 볼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검사들은 ‘부실 수사’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수사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장차 모든 책임을 검찰이 져야 한다는 위기감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동규씨는 대장동 사건의 첫 구속자이자 처음으로 기소된 인물이다. 수사팀은 지난 3일 8억원대 뇌물수수와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로 유씨를 구속해 19일간 그를 수사해 왔다. 법원이 유씨 구속영장을 발부해 준 것은 유씨의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향후 보강될 것으로 봤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사팀은 유씨를 기소하면서 배임 혐의는 물론, 유씨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5억원을 받았다는 영장 범죄 혐의도 제외했다. 검찰 안팎에선 “전담팀이 투입된 사건에서 주요 피의자 구속영장에 들어간 혐의 중 3분의 2가 날아간 것은 처음 본다” “수사팀이 고의로 수사를 뭉갰거나, 무능한 것 둘 중 하나”라는 반응이 나왔다. 일부 검사들은 “황당한 수사이고, 징계감”이란 말도 했다.

당초 유씨를 구속할 때 수사팀은 유씨가 김만배씨로부터 받은 5억원 중 4억원은 수표라고 했다가 이후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는 “모두 현금”이라고 말을 바꿨다. 당시 영장전담판사가 “계좌 추적을 했느냐”고 묻기까지 했고 수사팀은 “진행 중”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법원은 김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태훈 4차장 산하 중앙지검 인력들이 주도하는 배임 수사 내용은 수사팀 내부적으로 공유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당초 유동규씨를 구속했을 때 배임 혐의를 적용했지만 최근 들어 “법리가 명확지 않다”며 후퇴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수사팀은 성남시청 압수수색도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에 떠밀려 뒤늦게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던 게 아니라 아예 청구를 안 했다가 뒤늦게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장동 수사는 ‘윗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유동규·김만배·남욱 변호사 등이 공모한 ‘부동산 개발 비리 사건’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결국 검찰은 수사가 이재명 지사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유씨를 추가 기소하더라도 배임 혐의는 빼놓을 것 같다”며 “만약 배임 혐의를 추가 기소한다고 해도 이 지사와는 선을 그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특검 도입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배임 혐의를 뺀 유씨 기소는 ‘윗선 수사 포기 각서’나 다름없다”며 “특검을 임명해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도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특검을 수용해 다 털고 가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특검 도입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야당에서 특검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중 과반이 이에 찬성해야 한다. 현재 169석인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면 사실상 특검 도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