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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해변의 초보 서핑족, 스님은 아직도 '사춘기'

김병기 입력 2021. 10. 23. 15:03 수정 2021. 10. 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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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1만리, 두 바퀴 여행]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강릉 허균·허난설헌 기념관②

[김병기, 권우성 기자]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아들바위공원.
ⓒ 권우성
 
남애항에서 사천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시원한 해변이었다. 자전거 네비게이션은 간혹 내륙 도로로 안내했지만, 해변에 난 마을길로 들어서도 막힘은 없었다. 

네비의 지시를 어기고 소돌포구쪽으로 자전거를 몰다가 만난 아들바위공원은 뜻밖의 볼거리였다. 파도에 깎인 기암괴석으로 형상이 거대하고 힘이 센 수소와 닮았다고 해서 소바위라 불렀다.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와 신혼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사천해수욕장] 검은 슈트의 정체는? 칠순 넘긴 초보 서핑족

그 이어 나타난 주문진항은 이전에 보았던 수많은 크고 작은 항구와는 규모가 달랐다. 어선뿐만 아니라 대형 화물선도 많았다. 오징어, 고등어, 꽁치, 게 등 신선한 수산물과 건어물을 파는 동해 최대 규모 어시장을 보니 낯설기까지 했다. 한 바퀴 휙 둘러본 뒤 사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남애항을 출발할 때 전화를 걸어 약속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에서 상인들이 오징어를 해풍에 말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 권우성
 경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어민수산시장.
ⓒ 권우성
 경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어민수산시장.
ⓒ 권우성
 경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 권우성
 
"아니, 남애항에서 여기까진 지척인데, 어디서 헤매다가 이제서 오는가? 아침 8시부터 수영하면서 기다렸구먼..."

사단법인 평화의길 이사장인 명진 스님(71)이었다. 승복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수경을 머리에 올려 쓰고, 수영복만 걸친 스님이 낯설고 우습기도 했다. 대관령에서 기거하는 스님은 매일 아침 일찍 이곳에 나와 오전 9시까지 수영을 한다고 했다.  

"여기 관리하시는 분들이 9시에 출근을 해요. 멀리 나가면 호각을 불고 난리를 쳐서, 그분들이 오실 때까지만 수영을 합니다. 그래서 난 프랑스가 좋아. 하-하-하. 옛날에는 저기 보이는 저 끝 8km정도 되는 곳까지 수영을 했어요. 3~4시간씩 물속에서 놀았죠. 최근 파도타기를 시작했는데, 내일부터 탈만한 파도가 밀려온다고 하니, 서핑보드를 들고 나가야죠." 
 
 사천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명진 스님
ⓒ 김병기
 
칠순을 넘겨 서핑을 시작했다는 스님은 아직도 청춘이었다. 그가 예전에 낸 책 제목처럼 아직도 <스님은 사춘기>였다. 명진 스님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능숙하게 자유형과 평형을 구사한 뒤 물을 털면서 해변으로 나왔다.   

[경포대] 경포대에 뜬 5개의 달  

명진 스님과 점심식사를 한 뒤 경포대에 올랐다. 경포해변에서 2.2km 떨어진 곳인데, 경포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 중 으뜸을 경포대로 꼽으면서 "잔잔한 호수에 비단을 곱게 다려 펼쳐 놓은 것 같다"고 묘사했다. '제일강산'이라고 적힌 현판 아래에 앉으면서 명진 스님은 한마디 덧붙였다.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불리는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정면 6칸, 측면 5칸, 대청을 받치는 기둥이 28개이다.
ⓒ 권우성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 권우성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
ⓒ 권우성
  
"사람들이 경포대를 보러 와서 저기 해변에만 머물고 경포대를 안 와. 경포대에 와서 경포대를 포기하는 거지. 하-하-. 경포대에 달이 몇 갠지 아나요? 하늘에 뜬 달, 사랑하는 님의 눈동자에 뜬 달, 그와 기울인 술잔에 뜬 달, 경포호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이러면 다섯 개 맞나?"

경포호를 사이에 두고 경포대 맞은편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의 툇마루에 승복을 입은 낯익은 스님과 마주 앉았다. 강릉은 지나는 길이어서 인사도 드릴 겸 만났는데, 마침 남북 통신 연락선이 복원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평화의길 이사장이기도 한 스님에게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를 하자 자연스레 남북문제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고성통일전망대? 저는 금강산 관광 막히고 나서부터는 정내미가 떨어져 안 가요. 예전에 금강산까지 갔다 왔는데, 갈 생각을 안 하죠. 그리고 무슨 통일을 전망하나? 이젠 전망만 하지 말고 빨리 통일하면 되지. 이름부터 바꿔야죠. 하-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명진스님
ⓒ 김병기
 
유쾌하게 시작한 그는 통쾌하게 말을 이었다.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참여했죠. 그런데 중국은 지금 가장 큰 경제적 파트너입니다. 우리 민족을 악랄하게 지배하고 탄압했던 일본과도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어쩌구 저쩌구해서 멀어졌지만 외교관계도 맺고 있죠. 그런데 왜 우리 민족끼리 원수처럼 지내야 하나요? 주변 4대 강국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명진 스님은 "조선통감부 때부터 50여년간 대한민국을 쑥대밭 만들고 정신 상태를 노예화시키려던 일제에 대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아직도 한국 사회의 주류"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자주, 자립, 자존을 내걸고 미국 눈치 보지 말고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진스님은 마지막으로 "남과 북은 피를 나눈 형제간인데, 죽일 놈, 살릴 놈하면서 싸우면 그 집구석이 잘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한 뒤 "50년 닦은 나의 도력으로 앞을 내다보면, 문재인 정권이 분단문제는 매듭을 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허균·허난설헌 생가] 혁명의 공간

스님은 혼자서 기념관을 둘러보라면서 한 마디 던진 뒤 자리를 떴다.  

"여기는 혁명의 공간이죠. 허균은 혁명가였어요. 허난설헌은 일찍 요절을 했지만, 아주 훌륭한 여류시인이었죠. 안동 양반 집으로 시집을 가서 여성을 무시하던 남존여비의 시대에 뜻을 못 펴고 요절한 게 안타깝죠." 
 
 강원도 강릉시 허균허난설헌기념관.
ⓒ 권우성
 강원도 강릉시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내 허난설헌 동상.
ⓒ 권우성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무고하게 역모 혐의를 받고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였으며 당시 중국과 일본에 이름을 날린 여류시인이다. 하지만 15세에 안동 김씨 가문으로 시집을 간 뒤 시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다가 두 아이를 잃고 쇠약해져서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에는 여러 개의 시비가 서 있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芳)/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西風一被拂 零落悲秋霜)/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死)/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감우(感遇) 허난설헌]
   
 강원도 강릉시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소나무숲.
ⓒ 권우성
 
생가터 뒤쪽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은 뜻을 펴지 못한 두 남매가 뛰놀던 공간이다. 울창한 솔밭을 산책하면서, 그날 자전거 길에서 만난 역사의 흔적들을 되짚었다. 공통점이 있었다. '혁명'이었다. 고려말과 조선초 신진사대부들은 양양향교와 하조대에서 혁명을 모의했고, 허균·허난설헌 생가터는 조선 중기 부조리한 사회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꿈꾸던 자리였다. 

자전거 페달을 잠시 멈추면 시간 여행길이 열린다. 

[내가 간 길]  
속초 아바이마을-대포항-몽돌소리길-연어생태공원-양양향교-하조대-남애항-사천해수욕장-경포대-허균·허난설헌 생가

[인문·경관 길] 
-낙산사 : 강원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다.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의상(義湘)이 창건했다.

-하조대 : 강원도 양양군 암석해안의 쪽빛 동해에 솟은 기암괴석과 바위섬을 조망할 수 있다.  

-경포대 : 누대에 오르면 경포해변과 인접한 경포호의 빼어난 풍광을 볼 수 있어서 옛날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었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기념공원에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와 두 남매를 기념하기 위한 문학 공원이 조성돼 있다. 

[사진 한 장] 
낙산사 와편 담장 : 낙산사 원통보전과 칠층석탑을 다른 건물로부터 구분하면서 담장 자체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추천, 두 바퀴 해찰 길]
몽돌소리길 : 양양군이 설악해변과 물치해변 3km 구간에 조성한 길이다. 예술작가들이 참여해 리모델링 한 길인데, 해변 길을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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