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백내장' 4년만에 22억에서 528억으로 늘어난 갑상선 수술비

허유진 기자 2021. 10. 23. 16: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분만에 수술 끝내는 병원
의료쇼핑 시켜주는 브로커

#1 지난 2월 강원 속초시에 거주하는 한 모자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A 병원에서 갑상선결절(혹) 고주파절제술을 받았다. 갑성선결절 고주파절제술이란 갑상선에 생긴 결절 내부에 특수 바늘을 찌른 후 고주파를 이용해 열을 발생시켜 태워 없는 수술이다. 이 수술은 통상 20~30분이 소요되는데 보험설계사 어머니 B(51)씨와 고등학생 아들 C(19)군의 수술이 6분 간격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지난 4월에 D(43·경기 군포시)씨와 E(23·서울 은평구)씨를 2분 단위로 수술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3명의 환자를 5분 단위로 시술했다고 기록지를 발급했다.

갑상선암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는 한 여성.

#2 지난 12월 목 부분에 이상을 느껴 서울의 한 병원을 찾는 40대 중반 김모씨는 갑상선 결절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수술이 필요하다며 보험 가입 여부를 묻자, 김씨는 갑상선 수술 보장 담보가 있는 보험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병원은 김씨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줬고, 브로커를 통해 보험에 가입한 김씨는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수술을 받았다. 보험 가입 전 시행한 초음파 검사 이력은 보험가입 후 초진으로 조작됐다. 알고보니 지난 1년간 이 병원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은 환자는 전부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 뿐이었다.

일부 병원의 ‘백내장 과잉진료’로 속을 태운 보험사들이 이번엔 ‘갑상선 수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및 수술비 담보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과잉진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적 관찰만 해도 되는데 수술 권유하는 병원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실손보험과 수술비 정액 담보 보험에서 갑성선 결절로 인한 고주파절제술 관련 보험금은 759억원으로 전년 동기(211억원)에 비해 359.7%가 늘었다. 지난해 전체 지급된 보험금(699억원)을 상반기만에 넘어선 것이다. 특히 수술 보험금 증가세는 가파르다. 수술 보험금은 2018년 22억원에서 2019년 54억원, 2020년 384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528억원이 지급됐다. 3년 반 사이에 2400%가 증가한 것이다.

이 수술은 실손보험을 통해 실제 나간 치료비를 보장받는 것은 물론, 수술비 담보 특약에 가입돼있다면 1000만~2000만원 수준의 보험금 수령이 가능하다. 그러나 갑상선 결절의 경우 수술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갑상선 영상의학회는 2㎝ 이하로 작고 미용상 문제나 증상이 없는 갑상선 결절은 수술을 권하지 않고 있다. 수술을 하지 않고 추적 관찰 등으로 치료 가능한 경우에도 일부 의료기관에서 과잉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일부 병원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영업에 뛰어들며 생긴 결과로 보고 있다. 보험금 지급액이 일부 병원에 지나치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F보험사가 수술 보험금 지급액 통계를 내봤더니 전체 보험금 지급액의 81.4%(25억3100만원)가 청구 건수 상위 10개 병원에 집중됐다. 청구금액이 가장 많은 G병원은 지난해 3억5600만원의 수술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2.3배에 달하는 8억3200만원을 청구했다. 올해 1분기에만 수술 보험금으로 120억원을 지급한 H보험사에서도 전체 갑상선 수술 보험금 지급액의 80%를 8개 병원이 차지했다.

이들 병원은 지나치게 짧은 시간 내 연달아 수술했다는 내용의 기록지를 발급하거나 한번에 제거 가능한 결절 여러 개를 수차례 나눠 제거하는 식으로 보험금을 타가고 있다. 20대 중반의 여성 I씨는 지난해 10개월 간 2개월 간격으로 5차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일부 병원은 병실이 없는 의원임에도 6시간 입원 처리해 보험금을 과대 청구하기도 한다.

◇보험 가입 후 의료 쇼핑 시켜주는 브로커

보험업계는 보험금 청구 상위 병원에 브로커가 연결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J병원의 경우 한 보험설계사에게 실손보험을 가입한 환자 19명이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이들은 갑상선 수술뿐만 아니라 백내장과 자궁근종 하이푸시술(자궁의 양성종양을 초음파로 치료하는 시술)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시술비가 비싼 비급여 진료를 잇따라 받았다.

K씨(40·경기도 의정부시)는 지난해 4월에 서울 강남의 한 안과에서 950만원 짜리 백내장 다초점렌즈삽입술을 받은 뒤 지난 7월 강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310만원 짜리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L씨(49·경기도 시흥시)도 K씨와 같은 안과와 산부인과에서 2019년 5월과 지난 7월 각각 같은 치료를 받았다. M(50·경기도 파주시)씨는 지난해 11월 같은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지난 1월과 7월 같은 산부인과에서 각각 자궁근종 하이푸시술과 갑상선 수술을 받아 총 2050만원을 수술비로 청구했다.

보험업계는 “일부 병원들의 과잉 진료와 보험금 청구가 전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보험금을 많이 지급되면, 위험률이 올라가 모두의 보험료가 인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에서 나간 보험금은 작년 상반기(4조9806웍원)보다 11% 늘어난 5조527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 결과 손해를 본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올리거나 상품 판매를 포기했다. 2009년 9월까지 팔린 구(舊)실손보험은 올해에만 평균 17.5∼19.6%씩 보험료가 올랐다. 실손보험을 판매하던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30곳 중 13곳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이미 판매를 중단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