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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이런 비경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노시경 입력 2021. 10. 2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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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과 삶]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즐거움, 안덕계곡 기행

2021년 9월의 제주 여행기입니다. <기자말>

[노시경 기자]

오늘은 제주의 숨은 비경을 간직한 계곡을 찾아 나섰다. 그동안 제주도에 올 때마다 이 앞을 수없이 지나갔지만 나는 안덕계곡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계곡 입구의 주차장도 너무 여유가 있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어렵지 않아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혼자서 오롯이 제주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안덕계곡 입구. 원시림 속의 돌하르방이 여행자를 반긴다.
ⓒ 노시경
 
제주도민들이 극찬하는 곳, 안덕계곡

안덕계곡 입구의 계곡을 내려가자 입구부터 색다른 느낌이 있다. 안덕면 감산리의 용천수인 생이물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감산리에 마을이 들어서게 된 역사를 만들어준 소중한 용천수이다. 듬직하게 생긴 돌하르방도 우리를 반기는데, 이 돌하르방은 제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온몸이 정화되는 듯한 공기 속 계곡으로 들어갔다. 

제주도의 계곡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이 안덕계곡이 제주도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한다. 밀림처럼 우거진 숲속으로 잘 조성된 나무 데크의 생태탐방로를 걷기 시작하면 왜 안덕계곡이 아름답다고 하는지 바로 알게 된다. 
 
▲ 바위그늘 집터. 탐라국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계곡 옆에 남아 있다.
ⓒ 노시경
 
계곡을 오르다 보면 고사리 무성한 숲속에 신비스럽게 생긴 동굴이 보여 저절로 들어가보게 된다. 계곡의 맑은 물과 함께 군데군데 있는 동굴은 선사시대의 삶의 터전으로도 알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바위 그늘 집터는 제주도가 한반도의 통일국가에 복속되기 전, 탐라시대 후기에 사용되었던 동굴 주거지였다. 아치형 그늘 형태의 집터에서는 적갈색 토기와 곡물을 빻는 데 사용한 '공이돌'이 발견되어, 안덕계곡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안덕계곡은 제주도에 유배 왔던 많은 학자들이 찾았던 곳이다. 안덕계곡 창고천 인근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추사 김정희 역시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김정희가 남긴 편지에 의하면, 창고천의 물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정희가 안덕계곡 인근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권진응(權震應)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 안덕계곡 산책로. 추사 김정희가 부러워했던 맑은 물길을 따라 데크 길을 오른다.
ⓒ 노시경
 
차(茶)를 좋아했던 김정희는 상등의 물을 구할 수 있었던 창고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권진응을 부러워하고, 좋은 물을 구하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유배가 끝날 무렵에는 식수의 불편 때문에 김정희가 물 좋은 이 안덕계곡을 다녀가거나 유배지를 옮겼다고 하니, 좋은 물을 얻기 위한 김정희의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2백 년 전 추사 김정희가 다니던 추사 유배길의 3코스 '사색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 안덕계곡 비경. 전혀 예상치 못한 기암절벽의 비경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 노시경
   
산책로의 데크 길이 잠시 끊어지면서 계곡의 평평한 암반 바닥을 걷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암반 바닥 위를 유유히 흐르는 계곡수가 신비로운 운치를 자아낸다. 나는 계곡수 옆의 암반 위를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걸으며 계곡의 절경을 만끽했다.

그림 같은 기암절벽과 압도적인 계곡 풍경

조금 더 계곡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압도적인 풍광이 나타난다. 천연기념물 제377호인 울창한 상록수림 지대 아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계곡 양쪽을 둘러싼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곳은 바로 인기 드라마 <추노>와 <구가의 서>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조면암으로 형성된 육중한 바위는 마치 계곡을 지키는 장군처럼 우뚝 서 있는데, 이 절벽 바위를 'U'자형으로 돌아가는 계곡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계곡 옆 언덕의 데크 길로 올라서서 조금 더 걸어가자 도고샘이 나온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심산계곡 안에서 생수가 다량으로 솟아나는 곳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생수가 솟아나는 도고샘은 마을 주민들의 빨래터로도 유명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풍부한 물을 이용하여 선조들이 벼농사를 지었던 흔적까지 남아 있으니 안덕계곡은 주민들의 생명과 같은 곳이었다. 
 
▲ 울창한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377호인 상록수림 지대는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 노시경
 
태고의 느낌이 물씬 나는 깊고 어두운 계곡. 무언가 묘하고 신비한 느낌이 드는 이 계곡은 자연의 녹색 빛이 여행자를 반겨주는 곳이다. 기암절벽 아래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고사리들은 지구의 오랜 역사를 떠오르게 하고, 아무도 없는 계곡의 물은 너무나도 맑다. 물속에 뛰어들고도 싶지만 천연기념물을 보존해야 하는 곳이니 참을 수밖에 없다.
 
▲ 양재소. 가뭄 때에 계곡 하류의 논에 물을 대던 소중한 장소였다.
ⓒ 노시경
 
나와 아내는 계곡의 폭이 좁아지는 안덕계곡 상류 끝까지 계속 걸었다. 계곡 상류에는 길이가 80m, 깊이가 최대 30m나 되는 커다란 소(沼)가 자리하고 있었다. 재물을 기른다는 뜻의 양재소(養財沼)는 가뭄이 들면 하류 지역의 논에 물을 대던 곳이다. 양재소를 내려가다 보니, 수백년 된 육박나무가 계곡으로 거대한 가지를 한껏 뻗고 있다.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일어나는 곳이다. 
 
물줄기가 가늘어지는 계곡 상류 옆에는 집 몇 채 들어선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이런 조용한 마을에 내려와서 사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감귤밭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 계곡 상류의 연못.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사랑스러운 연못에서 휴식을 취한다.
ⓒ 노시경
 
이 작은 마을에는 고급 호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조경의 정원과 연못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연못은 조금씩 내리는 빗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연못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주의 마을, 오름, 바다와 그 안에 깃들인 제주의 이야기들을 여행기로 게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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