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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규제샌드박스 '성과 홍보' 유감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입력 2021. 10. 2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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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언 변호사

정부는 올해 2월 규제샌드박스 시행 2년의 성과를 발표했다. 국무조정실장은 발간사에서 "규제샌드박스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90%가 넘는다. 신산업 발달을 쫓아가지 못하는 기존의 법과 제도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샌드박스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규제샌드박스제도는 순항 중이며 막는 규제 때문에 신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일은 이내 곧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 제도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90% 넘는 것이 사실일까.

필자는 지난 2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의 규제샌드박스 사전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전심의위원회는 규제샌드박스를 허용할지를 결정하는 본위원회에 올리기 전에 해당 규제의 주무부처와 규제샌드박스 신청기업, 그리고 민간심의위원들이 모여서 허용요건 해당 여부를 심의하는 절차다. 이 사전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또 신청기업의 규제샌드박스 신청을 지원하거나 대리하면서 보고 들은 현장의 실태는 국무조정실의 언급대로 만족도가 90% 넘는 호화찬란한 축복의 장이 아니었다.

사전심의 단계에서 규제샌드박스 운영부처인 과기정통부 등은 해당 규제의 주무부처에 해당 규제샌드박스 신청의 적절성에 대해 의견을 조회하는데 주무부처들의 회신은 '불수용'(해당 신청에 동의하지 않음)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주무부처가 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운영부처는 해당 신청안건을 본심의위원회에 상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주무부처가 해당 신청에 동의해야 실증특례나 임시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그 시행 시 부가조건을 협의할 수 있으므로 주무부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본심의위원회에 상정해봐야 제대로 심의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무부처가 반대하더라도 운영부처가 어렵사리 본심의위원회에 상정하는 신청안건도 간혹 발견할 수 있는데 본심의위원회에서도 여전히 주무부처가 강한 반대를 고수하면 다수의 민간위원이 이 안건의 통과를 지지하더라도 본심의위원장인 운영부처의 장관이 표결을 강행하지 않아 안건이 보류상태가 된다. 이후 해당 안건은 대부분 다시 본심의위원회에 상정되지 않는다. 본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실증특례나 임시허가에 따라 신청기업이 사업을 수행할 때 지켜야 하는 부가조건을 운영부처가 임의로 지정한다. 이 부가조건은 혹시 발생할지 모를 국민의 피해를 예방하고 손해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 명분인데 안건에 따라서는 20여개에 달하는 부가조건을 부여하고 주된 내용은 고객수나 운영대수, 운영지역을 극도로 제한하고 '보험'에 가입하라는 것들이다. 이런 극도로 사업을 제한하는 부가조건을 준수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고 수익을 내기 어렵다. 규제샌드박스사업으로 지정되더라도 특례기간 2년 동안 부도를 회피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본심의위원회를 통과한 사업들은 주무부처가 크게 반대하지 않는 사업들인데 대개 해당 산업에 빅뱅을 가져올 만한 경천동지할 사업들이라기보다는 기존 관치산업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것들이라는 것이 필자의 관찰결과다.

신청기업에 손해배상을 담보할 '보험'을 들라는 규제는 정말 과잉규제의 대명사다. 규제특례로 사업을 허가한 경우 금지규제의 특례를 허용한 것이므로 그 사업수행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런데 혹시나 사업수행에서 발생할지 모를 제3자에 대한 손해를 담보할 보험을 들라는 것이다. 특례사업은 새로운 사업모델이므로 보험상품이 나와 있을 리 없어 신청기업은 보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보험상품 출시를 애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황금 같은 몇 개월이 또 낭비된다. 설령 인명과 재산에 손해를 야기했다 해도 손해배상제도에 의해 처리하면 될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규제샌드박스 특례를 받은 기업들에 큰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가물에 콩 나듯 들린다. 투자자들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데 실증특례기간 2년 내에 해당 규제가 풀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 해당 기업은 고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규제샌드박스가 국무조정실장의 호언대로 만족스럽게 운영된다면 왜 우리는 이 제도의 시행으로 10년 후 세계를 주름잡을 스타트업의 성장소식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어렵사리 규제샌드박스를 받더라도 정부의 아무런 지원 없이 자기 자본으로 고군분투하다 폐업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특례일까. 본심의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주무부처의 강한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한 안건들이 진정 우리의 미래를 밝힐 황금알을 낳을 거위들이다. 정부가 진정한 혁신산업을 원한다면 국민들을 앞세워 희망고문을 하지 말고 그냥 스스로 낡은 규제를 혁신하라.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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