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않았는데..바이든 외교책사 "한·미 입장차 있을수 있다"

박현주 입력 2021. 10. 27. 16:58 수정 2021. 10. 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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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에 대해 "한국과 계속 협의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유지하던 미국이 순서, 시기, 조건 등 세 가지 요소를 특정해 한국과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임기말 총력전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만능주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 보좌관. EPA. 연합뉴스


묻지도 않았는데..한ㆍ미 입장차 밝힌 美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각각의 단계에 대한 정확한 순서(sequencing)ㆍ시기(timing)ㆍ조건(condition)에 대해 한국과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다만 (한ㆍ미 간) 핵심적인 전략적 구상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 유엔사 및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 등 종전선언의 파급력에 대한 우려가 표출된다는 중앙일보 보도(10월26일자 6면) 뒤 정부는 “종전선언은 신뢰 구축을 위한 정치적ㆍ상징적 조치로 현 정전체제의 법적ㆍ구조적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안은주 외교부 부대변인, 지난 26일 정례브리핑)고 설명했으나, 직후 나온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은 결이 다소 다른 셈이다.

특히 이는 백악관이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종전선언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지 묻는 데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미 간 입장차가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설리번 보좌관이 묻지도 않은 의견 차이를 언급한 것이다.

특히 그가 한·미 간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특정한 세 가지 요소는 모든 협상에서 핵심이다. 풀어 이야기하자면▶누가,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순서) ▶언제 할 것인가(시기) ▶무엇을 대가로 할 것인가(조건) 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①순서="비핵화 먼저"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순서'는 종전선언과 북한의 비핵화 조치 간 선후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가 처음 시작된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북한의 비핵화 조치 전에 종전선언부터 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

종전선언은 북측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거나 최소한 담보됐을 때 가능하다는 게 미국의 변함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비례하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접근을 해왔는데, 그 패키지 안에서도 누가 먼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는 마지막까지 신경전이 벌어지는 부분이다.

실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싱가포르 북ㆍ미 합의도 결국 순서가 문제가 됐다. 4개 항으로 구성된 싱가포르 합의는 1항에 '새로운 북ㆍ미 관계 수립', 3항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따라 북·미 관계 회복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비핵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북·미 협상 교착의 큰 불씨가 됐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2018년 7월 후속조치 협의를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이 방북한 직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낸 담화에는 이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담화는 “미국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며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뤄 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스트레이츠타임스. 연합뉴스.


②시기="뒤탈 없도록 검토 마쳐야"


설리번 보좌관이 두번째로 언급한 ‘시기’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종전선언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내년 2월 베이징 겨울 올림픽을 전후로 남ㆍ북ㆍ미ㆍ중 종전선언이 성사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지난달부터 외교ㆍ안보 라인 각급에서 대미 설득전에 나선 것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이 채 100일도 남지 않았다는 시간적 촉박함과 연결된다.

동시에 정부는 미국과 협의 뒤 “종전선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계기로 상당히 유용하다는 데 한ㆍ미 공감대가 있다”(지난 19일 미 워싱턴, 정부 고위 당국자), “미국도 진지하다”(이수혁 주미 대사, 13일 미 워싱턴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 등 논의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정작 미국은 “계속 협의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표명하는데도 말이다. 일각에선 내년 3월 대선 등 국내정치적 요소를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초래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은 없는지 법률 검토를 철저히 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현재 한국의 종전선언에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사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원하는 시간표에 맞춰서 미국이 검토를 끝내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종전선언을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반부에 둘지, 후반부에 둘지도 민감한 문제다. 정부는 종전선언과 관련, ‘비핵화 입구론’을 펴고 있다. 프로세스 초반에 비핵화 협의를 추동하는 데 유용한 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초반부에 종전선언을 해버린 뒤 비핵화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짙은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미중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청와대. 뉴스1.


③조건="제재 원칙ㆍ동맹 기반 불변"


마지막 요소인 '조건'은 말 그대로 '종전선언을 무엇과 바꿀 것이냐'와 관련된다. 현재 북ㆍ미는 모두 종전선언에 대해 '내가 받는 게 아닌, 상대에게 주는 선물'처럼 인식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2018년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거론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미국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종전선언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양보 조치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까지 나서서 대북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를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오히려 북한이 베푸는 시혜적 조치처럼 주장한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26일 환황해포럼 토론회에서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고 북ㆍ미가 대화하려면 북한이 원하는 것도 줘야 한다"며 유엔 대북 제재 완화 등을 거론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한다면 제재 완화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이 한·미 간 이견이 있는 부분으로 ‘조건’을 든 것도 이런 한국 내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지만,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 없이 제재 완화는 안 된다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 국가안보회의의 책임자가 이처럼 명확히 이야기한 것은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다는 뜻이며, 한국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어 보인다”며 “특히 ‘조건’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으로, 종전선언 이후 유엔사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해 북ㆍ중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 구상까지 흐트러질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과 관련, 한ㆍ미 간 이견 여부를 묻자 “앞으로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과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힐 뿐 즉답하지 않았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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