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손준성 영장' 부실, 고발장 작성자도 물증도 없다

하남현 입력 2021. 10. 28. 00:03 수정 2021. 10. 28.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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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법조계에선 여권의 ‘속도전’ 주문에 소환 조사도 없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한 김진욱 공수처장의 자충수란 지적이 나온다. “수사력 부족 우려 현실화” “국민 기본권 침해” 등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일단 각종 ‘절차’ 논란이 뼈아프다. 공수처는 지난 20일 ‘소환 불응 등 수사 비협조’를 이유로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상식 밖의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손 검사 소환 조사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다. 공수처가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자임했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북송금’ 사건 특별검사 출신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도 27일 국정감사에서 “체포 영장이 기각되고,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라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별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법조인으로서 찬성할 만한,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전날 “피의자가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방어권 보장을 위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보장하지 않고 영장을 거듭 청구하면서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25일 오전 구인장을 발부받아놓고 그날 오후 2시에서야 손 검사 측에 알린 것도 비판 대상이다. 손 검사 측 변호인은 “26일 한 공수처 검사가 손 검사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팀의 방침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공수처는 “‘상부 지침으로 늦게 통보하였다’라거나 ‘미안하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수사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수처는 영장을 청구하면서 “손 검사가 성명불상자에게 문제의 고발장 작성을 시켰다”고 밝혔지만 정작 그 성명불상자가 누구인지는 명시하지 못했다. 고발장 원본 등의 물증도 확보하지 못했다. 법원도 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공수처 수사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더 커졌다. 손 검사는 앞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공수처가 야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 등을 언급하면서 강제수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겁박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이 고발 사주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는 윤석열 전 총장은 이날 “사법부가 공수처의 ‘속 보이는 정치공작’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공수처가 아니라 공작처”라고 비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까지 공수처는 ‘선진 수사’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에 대한 소환 일정을 조율하면서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출일(11월 5일)이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난관에 봉착한 만큼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조사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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