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장 헛발질 공수처, 정치 중립 의심받는다

입력 2021. 10. 28. 00:04 수정 2021. 10. 28.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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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 처음 출석했다. '고발 사주' 의혹을 받는 손준성 검사에 대한 무리한 영장 청구로 공수처의 중립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사진기자단]


손 검사 체포영장 기각 후 구속영장 무리수


민주당의 법원·공수처 공개 압박도 부적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행동으로 오해받고 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받아 온 손준성(대구고검 인권보호관) 검사에 대해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지난 26일 기각했다. 지난 1월 공수처 출범 이후 처음 청구한 ‘1호 영장’이 기각된 것이다. 영장이야 사안에 따라 인용될 수도, 기각될 수도 있지만 이번 사안은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공수처가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불과 사흘 만인 지난 23일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했다. 영장 청구 사실을 손 검사 측에는 영장 실질심사 하루 전인 지난 25일에야 통보했다.

“피의자가 소환에 불응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법원이 체포를 통한 강제 수사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피의자인 손 검사에 대한 직접조사도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그것 자체로도 무리수였다. 무엇보다 손 검사는 변호인을 통해 “11월 2일 출두하겠다”고 수사에 협조할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이러다 보니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달 10일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공수처가 최근 잇따라 영장 헛발질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공수처의 독립을 훼손하는 행태를 드러내 빈축을 샀다. 민주당 ‘고발 사주 국기 문란 진상규명 TF’ 단장을 맡은 박주민 의원은 법원이 영장을 검토하고 있던 시점에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면서 “영장은 반드시 발주될 필요가 있다고 다시 한번 당부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민주당을 지목하며 공수처에 영장 사주와 정치공작을 지시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은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청구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개입하려는 것이고 “공수처가 정치 개입을 선언했다”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손 검사에 대한 공수처의 영장 청구 과정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공수처 수사가)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겠나. 공수처가 망신살이 단단히 뻗친 셈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어제 당 최고위에서 “손 검사에 대한 국기 문란 행위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법원은 힘 있는 검사의 방어권을 보장한 만큼 일반 국민의 방어권도 보장해야 한다. 공수처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철저한 수사를 부탁드린다”며 법원과 공수처를 재차 압박했다. 대단히 부적절한 언행이다.

공수처는 출범 과정에서 많은 의구심을 낳았다. 지금처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심받는다면 존재 이유가 무색해진다. 영장 불발을 공수처는 자신을 돌아보는 뼈아픈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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