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증오는 나의 힘

2021. 10. 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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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번 대선은 증오 투표가 될 것이다. 어느 캠프에도 제 후보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없다. 그저 상대 후보를 향한 적의가 있을 뿐. 상대에 대한 증오, 이것이 그들이 자기 편 후보를 지지하는 유일한 이유다. 어쩌다가 정치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이게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트럼프 정권 이후 이 현상이 극명해졌다. 과거에는 민주당에도 공화당 스러운 의원들이 있었고, 공화당에도 민주당 스러운 의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두 당이 서로 섞일 수 없게 확연히 갈렸다. 그렇게 진영으로 갈린 유권자들이 서로 상대에게 적의와 증오를 퍼붓는 게 정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 감정 중 사랑보다 강한 게 증오
대선, 상대에 대한 적의만 남아
여기에 특정 집단 혐오 더해져
다섯 달 증오의 극한 경험할 것

물론 과거에도 두 진영 사이에는 적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 정도가 지나쳐 아예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지경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문제는 증오의 감정에 기초한 정치를 다시 이성적 대화에 기초한 정치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데카르트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으로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경험주의자 흄은 데카르트의 생각은 비현실적이라 결론짓는다. 일상을 관찰해 보니 이성이 감정을 이기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흄은 이이제이의 전법, 즉 특정한 감정을 그보다 더 강력한 감정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수많은 감정 중에서 제일 강력한 게 증오의 감정이 아닌가. 사랑이 아무리 힘이 센들 증오만큼 집요하고 강렬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다른 감정으로 증오를 제어한다는 흄의 전략도 여기엔 소용이 없다. 문명이란 거대한 감정의 용 덩이를 둘러싼 얇은 맨틀 같은 것.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악마’다. 그 증오가 얼마나 강렬한지 조국 사태 때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은 윤석열 저주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찔러 댈 정도였다. 이때 형성된 ‘악마상’은 정경심 교수의 중형선고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이 법원에서 인정받은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야당 지지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조폭시장’. 그들은 ‘아수라’를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여긴다. 심지어 영화 속 안남시의 모델이 성남시였다는 설까지 떠돈다. 흥행에 실패한 이 영화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단다. 야당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이재명 후보는 그렇게 안남시장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 이상으로 강력한 게 이재명 후보에 대한 이낙연 지지자들의 증오. 그들에게 이재명은 제 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고 형수에게 쌍욕을 퍼붓는 ‘사이코패스’다. 형수에게 쌍욕을 하는 녹취록, 시 의회에서 삿대질하고 철거민에게 폭언을 하는 영상 등 그의 남다른 인성을 강조하는 자료들은 대부분 이들이 유포한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별다른 정보가 없을 때 사람은 일단 사안을 호오의 감정으로 판단한다. 이 최초의 이미지는 너무 강렬해 그 이후에 따르는 이성적 판단을 제 아래 종속시켜 버린다. 그때 이성은 고작 감정이 내린 최초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정치인들도 증오의 정치에 나섰다. 유권자를 이성으로 설득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두는 기법을 왜 마다하겠는가. 이재명 후보는 ‘윤두환’ 상을 만들려고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원희룡 후보는 이재명을 ‘소시오패스’라 불렀고, 조국 전 장관은 윤석열을 ‘사시(司試)오패스’라 불렀다.

증오가 특정 인구집단을 겨냥하면 혐오가 된다. 정치인들은 증오만이 아니라 혐오까지 이용한다. 이재명 후보는 의사집단,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증오를 활용해 지지율을 끌어올려 왔다. 국민의힘 후보들의 경우에는 여성혐오와 노조 혐오가 아예 공통 공약이 되다시피 했다. 지지율이 증오와 혐오에서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바탕에서 나는 이 사회의 어떤 부정적 상태를 본다. 어차피 비전도 희망도 없는 세상. 그 해결책마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불행의 원인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지목해 미워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증오와 혐오가 이 가혹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 된 것이다.

얼마 전 ‘설거지론’이라는 것으로 SNS가 시끄러웠다. 그 바탕에서도 어렵지 않게 여성 혐오를 읽을 수 있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 치열한 오징어 게임에서 패한 이들이 자신이 겪어온 사회적 좌절을 자조에 가까운 여성 혐오로 풀어내는 것이다. 좌절과 체념조차도 이제는 혐오 없이는 할 수 없게 된 모양이다.

증오는 우리의 힘이다. 우리는 증오로 버티고 있다. 증오할 누군가가 필요할 때 만만한 게 정치인, 그것도 상대당 후보. 앞으로 대선까지 다섯 달 동안 증오의 극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끔찍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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