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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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정부를 생각한다

한겨레 입력 2021. 10. 2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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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2022 대선]

[숨&결] 배복주|정의당 부대표

20대 대통령선거는 이제 4개월 남짓 남았다. 의석수가 많은 두 정당의 후보들에 대한 대장동 의혹, 고발사주 의혹, 실언과 막말, 사과와 해명 등을 연일 접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심정에는 분노와 우려가 클 것이다. 시민을 걱정시키는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시민을 걱정하는 대통령 후보가 나와 시민의 삶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다음 정부의 대통령은 시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죽어간 시민, 고통받고 있는 시민을 떠올리며 인권정부를 생각한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 애도의 눈물만 가득하다. 비정규직, 파견직, 임시직, 일용직, 이주노동, 현장실습 등의 이름으로 노동하는 시민은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고 장시간 노동, 저임금과 부당한 차별을 감수하면서 일한다. 그래서 추락해서 죽고, 감전되어 죽고, 깔려서 죽고, 얼어 죽고, 물에 빠져 죽고, 괴롭힘을 당해 죽는다. 그래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처벌받지도 않는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 안전하고 차별 없는 노동환경을 만들어낼 대통령을 생각한다.

최근 몇년간 미투운동은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했다.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의 원인이다. 권력은 차별의 구조에서 악용되고 남용되기 쉽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선출직 공직자이자 정치인이다. 피해자는 모두 업무 관계에서 낮은 위치에 놓인 여성 직원이었다. 지지 세력에 둘러싸인 정치인의 권력형 성범죄에서는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2차 가해가 흔히 나타난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회복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이처럼 권력을 이용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낼 대통령을 생각한다.

올해도 고 변희수 하사를 비롯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소수자분들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구체적인 이유는 개인별로 다를 테지만,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로서 차별에 맞서서 살아가는 세상살이가 고단하고 힘들었을 것이란 사실이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는 없다. 특히 정치인과 대통령 후보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좌절을 느끼게 한다. 뒤로 미루어지는 인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 대통령을 생각한다.

몇년 전 서울 강서구에 장애학생의 배움터 서진학교 설립을 바란 장애학생 부모가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 적이 있다. 그때 눈물을 흘리며 학교는 포기할 수 없다며 무릎을 꿇는 장애학생 부모의 절박함에서 장애학생의 교육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든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장애시민한테 교육권을 비롯해 이동권, 노동권, 건강권, 참정권 등 모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는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국민이 무릎을 꿇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릎 꿇는 인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 대통령을 생각한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존엄한 인간으로서 온전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빈곤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그 환경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책임으로 떠넘기기보다, 그 환경에서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개인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문화와 인식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도 부당하게 차별받거나 침해당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모든 시민의 인권을 지키고자 권력을 선하게 사용하는 대통령을 그려본다. 시민의 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이 이끄는 인권정부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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