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곳간이 시민단체 ATM"이라더니..근거 못대는 서울시

김양진 2021. 10.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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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무리한 '박원순 지우기'
오 시장 지난달 '비판 회견' 관련
시의회 질의에 제대로 설명 못해
시 감사위 독립성도 훼손 우려
"박원순 중점사업 쥐 잡듯 뒤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시민사회 분야 민간 보조와 민간 위탁 사업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곳간은 시민단체 전용 에이티엠기(ATM·현금자동인출기)로 전락했다. (중략)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시민단체에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원 가까이 된다. 집행 내역을 일부 점검해보니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난달 13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이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 바로 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브리핑을 열어,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추진됐던 민관협치, 민간 위탁 사업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금 창구’ ‘쌈짓돈’ ‘다단계 피라미드’ 등 범죄를 연상시키는 단정적인 표현까지 등장했지만, 구체적 데이터나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샀는데, 관련된 서울시의회의 질의에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에 1조원? 선정 근거도 못 내놔

당시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 또는 민간위탁금이라는 명목으로 직접 또는 자치구를 통해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시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민간위탁금으로 5916억9300만원, 민간보조금으로 4304억7500만원 등 모두 1조221억6800만원을 지원했다는 자료를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정태)에 제출했다.

문제는 이 내역이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주민자치 △협치 △주거 △청년 △노동 △도시농업 △환경 △에너지 △남북교류 등 12개 분야만 따로 분류해 산출해낸 수치인데다, 이 기간에 서울시 전체 민간 위탁·보조금의 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집행액의 94%의 쓰임새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전임 시장이 힘주어 추진했던 과제에 투입된 6%만 문제를 삼은 모양새다. 서울시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과거 시의회 등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사업들”이라면서도 구체적 지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감사가 끝나는 대로 소상하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한 간부는 “그간 시의회에서는 12개 분야 외에도 민간 위탁 업무 전반(의 문제점 등)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박원순 시장이 중점 추진한 분야만 골라 좌표를 찍고, 쥐 잡듯 뒤져서 문제점을 찾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 중복지원?거짓말 수준 왜곡

당시 오 시장 발언 가운데 일부는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고의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듯한 부분들도 확인됐다. 일부 시민단체가 “사용한 경비를 투명하게 밝힌 정산보고서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민협력국·미래청년기획관 등 담당 부서들은 관련된 시의회 질의에 “해당하는 센터(민간기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결국 근거도 없이 민간 위탁기관들을 비리의 소굴처럼 보이도록 몰아붙인 셈이다.

또 “검증되지 않은 기관에 위탁된 공공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오 시장 언급과 관련해서도 실무 부서에서는 시의회 쪽과 통화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관에 어떻게 사업을 줄 수 있겠느냐”는 속내를 내비쳤다고 한다.

“특정 시민단체 중복지원은 허다했다”는 오 시장 발언은 교묘한 왜곡 비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는 지난 10년간 서울시 지원을 받은 9016곳 가운데 두번 이상 지원을 받은 곳은 98곳(1.1%)이라고 밝혔다. 비중이 미미할뿐더러, 운영 성과 등을 언급하지 않고 중복지원만 놓고 ‘특혜’인 것처럼 몰아붙인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3년간 네차례 청년기관을 운영한 ‘성북신나’는 성과 평가가 80점 이상으로 우수하고,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김정태 위원장은 “마을이나 청년, 이런 분야에 인력 풀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응모가 없어 사명감으로 일하는 곳을 두고 중복지원이고 특혜라 하면 그건 ‘거짓말’ 아니겠냐”고 말했다.

오 시장은 또 전임 박 시장이 시민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못’을 박아가며 과도하게 보호·지원했다고 주장했지만, 박원순 시장 재임 9년 동안(2011년 10월~2020년 7월) 민간 보조금·위탁금 관련 감사 횟수는 43차례인데, 오 시장 재임 5년 동안(2006년 7월~2011년 8월) 감사는 9차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너머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등 서울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에서 주민자치와 노동·민생 영역 예산이 마구잡이로 삭감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세훈 시장에게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내부 규정까지 바꿔 무리한 ‘답정너 감사’

이와 함께 서울시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훼손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 감사는 사회적기업, 태양광, 노들섬, 사회주택, 청년, 플랫폼창동, 혁신센터, 공공급식 등 모두 전임 시장 중점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관련 규정까지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민간위탁 관리지침’의 ‘종합성과평가와 특정 감사 중복 시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특정 감사를 다음 해로 유예’한다는 규정에 ‘시 감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같은 해에도 특정 감사를 실시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여기에 오 시장은 지난 7월 기존 개방형 직위였던 감사위원장 자리에 내부 직원인 이해우 국장을 임명하기도 했고, 이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 브리핑에 배석해 감사위 독립성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시 안팎에서는 “‘답정너’ 감사를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민간 위탁이나 보조금 집행과 관련해) 행정이나 회계 처리에 미숙한 민간단체들을 사전에 충분히 교육하고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객관적인 자료 제시 없이 언론브리핑을 통한 무분별한 비판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서울시마을법인협의회와 서울시민사회네트워크, 서울마을활동가연대, 사단법인마을 대표들이 지난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서울의 지역시민사회에 대한 원색적인 정치적 공격을 중단하고 서울시민을 위한 정상적 시정에 집중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에 세금 1조?…“뻥튀기·짜깁기 도 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단체 1조원 지원’ 발언을 두고서는 1조원 자체가 상당 부분 과장된 수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일 서울시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1조원 가운데 민간보조금은 4304억7500만원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가 최근 백혜련 의원실에 제출한 ‘오세훈 시장, 9·13 기자회견 관련 2020년 민간보조금 지원 현황(12개 분야)’ 자료를 보면, 2020년 서울시가 지원한 민간보조금은 624억5800만원이다. 여기에는 미집행액 127억1700만원이 포함됐다. ‘자치구 및 민간 축제 지원 육성’ 사업비(25억원) 등 항목인데, 편성됐지만 실제 지원은 이뤄지지 않은 예산이다.

민간보조금 항목에는 시가 자치구에 지급하는 ‘자치단체 경상지원금’ 241억2500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의 지방보조금 운영·관리지침상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은 민간보조금이 아니라 자치구에 주는 지원금(공동단체 보조금)으로 분류된다.

결국, 민간보조금 가운데 미집행액과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을 제외하면 시가 민간단체에 지원한 예산은 279억8600만원(중복예산 제외)으로 줄어든다. 10년 동안 4304억이란 액수도 상당 부분 부풀려진 액수일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시민단체 민간보조금 지원 예산에는 <조선일보>(서울형 햇빛발전 지원 380만4000원), <경향신문>(주민역량강화사업 2500만원), <문화방송>, <불교방송> 등 언론사도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학교 등 10개 대학, 한화솔루션 등 대기업 계열사 등이 지원받은 예산 104개도 민간보조금 지원 현황에 포함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2020년도 자료를 보면 많은 수치가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 정책을 위해 짜깁기 형태로 끼워 맞춰져 있다”며 “시는 1조원이 어떤 사업 예산인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인호 시 보조금관리팀장은 “미집행 예산이라도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자 예산이 세워졌기 때문에 편성액을 중심으로 수치를 구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자치단체 경상지원금은 자치구로 내려주는 예산이지만, 시민사회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라 1조원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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