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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을 믿지 마세요 [좋은데, 싫었습니다]

성지훈 입력 2021. 10. 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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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 싫었습니다] 몰취향의 시대,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지만..

[성지훈 기자]

 <백스피릿>의 백종원
ⓒ 넷플릭스
 
얼마 전 '백종원 게임'이라는 걸 알았다. 술자리 게임인데, 음식 이름을 얘기하고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서 그 음식의 '백종원 레시피'가 나오지 않으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어지간한 음식은 다 백종원 레시피가 있어서(심지어 그 음식을 파는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매장도 있고) 가능한 게임이다.

게임은 모든 음식에 레시피를 제공하는 '대 백종원 시대'를 풍자하는 것이겠지만, 조금 다른 생각도 해봤다. '우리는 그 게임에서 몇 가지의 음식을 댈 수 있을까?' 점심시간 혹은 저녁 술자리의 초입에 늘 고민한다. '오늘은 뭘 먹지?'. 그래봤자 떠올릴 수 있는 음식들은 뻔하다. 몇 안 되는 후보군을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가지만 이내 돌아오는 대답들이란 '그건 얼마 전에도 먹었어', '또 그거야?', '지겹지도 않냐?' 따위의 말들이다. 그건 어쩌면 상상력의 부재일까.

주말 데이트에 앞서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연인의 문자를 받으면, 네이버를 검색한다. 음식이름을 검색하면 백종원 레시피만 줄줄이 나올 것이 뻔하니 '맛집' 키워드를 함께 넣는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나는 것은 스폰서 링크와 광고, 광고일 것이 분명한 맛집 기사들이다. 벌써 꽤 지난 농담이지만 '오빠랑'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검색하면 찐 맛집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오빠랑'도 광고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가까스로 괜찮아 보이는 맛집을 발견해서 찾아가면 웨이팅만 1시간 30분이다. 예약도 안 되는 집이건만, '왜 예약도 안했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함께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들 모두 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왔겠지. 그러다 1시간 30분을 기다려 먹고 나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1시간 30분을 기다릴 만큼 맛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보다는 '왜 다들 똑같이 맛있다고만 하는 거지?, 나만 이상한가?' 같은 의문.

백종원과 황교익, 그보다는

한때 각광받던 미식평론가였던 황교익은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말했다가 된통 서리를 맞았다. 그러게 내가 들어도 참 얄미운 말이다(더구나 떡볶이 광고까지 찍었으니, 미워해달라고 애를 쓴 셈이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저도 먹고 싶다는 국민 소울 푸드 떡볶이를 맛없다고 하다니.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서 행복을 주고 있는 떡볶이의 위상과는 별개로, 떡볶이는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고 결코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음식이긴 하다. 특히 최근의 떡볶이들이란 소시지와 고기와 해물을 비롯해 온갖 (맛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잔뜩 넣어서 뒤죽박'죽'을 만들고 뒤섞인 맛을 감추기 위해 설탕과 캅사이신을 더 잔뜩 넣고, 그 자극적인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해 싸구려 치즈를 덮은 음식.

사실 지금 떡볶이는 괴식에 가깝다. 영양 면에서도 좋은 음식이기 어렵다. 밀가루나 쌀로 만든 떡은 탄수화물 함량이 너무 높다. 고추장도 장 자체에 당분이 매우 많은데 거기에 설탕을 한가득 집어넣어 소스를 만든다. 곁들이는 사리들도 면과 튀김 같은 고열량의 것들이다.

떡볶이를 사랑하고 좋아할 순 있지만 그 떡볶이를 맛있고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떡볶이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 죽기 직전에도 생각나는 소울 푸드가 반드시 매우 맛있고 엄청 건강할 음식일 필요는 없다. 음식이란 것도 TPO가 있으니까. 황교익이 욕을 먹는 건 호오의 문제를 시비의 문제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떡볶이
ⓒ pixabay
 
바야흐로 '대 백종원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서는 '용이성'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맛,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 쉽게 접근하는 맛이란 익숙하고 자극적이어서 쉽게 '맛있다'고 여겨지는 맛이다. 김치찌개에 설탕을 들이붓고, 마가린으로 호떡을 굽는 맛. 나아가선 그 쉬운 맛을 표준화 한다. 프랜차이즈다. 더 싸고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 모으는 음식을 맛있고 좋은 음식으로 강변한다.

'음식장사'와 '음식' 자체를 분리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장사가 잘되는 음식과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대 백종원 시대'의 토대는 자본주의다. 표준화된 레시피로 저가의 음식을 대량생산하여 온갖 골목을 한 가지 프랜차이즈로 장악하는 풍토. 경리단 골목을 자기 프랜차이즈로 도배했던 장진우는 어느 광고에서 "레시피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사꾼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황교익은 떡볶이를 맛없는 음식이라고, 맛없는 음식엔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는 것으로 떡볶이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을 맛없는 것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들의 취향을 무시한 것. 백종원(으로 대변되는 요식 프랜차이즈의 아이콘들)은 맛없는 음식도 잘 팔리면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기는 최면을 걸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몰수'했다. 그래서 백종원 얘기가 맞는지, 그래서 <백스피릿>과 <골목식당>의 맛집이 맛있는지, 황교익 얘기가 맞아서 <수요미식회>의 맛집이 맛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어느 쪽에도 우리의 '취향'은 없기 때문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9)씨
ⓒ 연합뉴스
 
실은 몰취향의 시대

개취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취향이 어디서 왔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실은 많은 취향 아닌 것들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취향을 갖는 것은 많은 노력과 경험, 단련을 필요로 한다. 백종원이 만든 김치찌개와 백종원이 만들지 않은 김치찌개만을 경험해 본 이가 김치찌개 취향을 이야기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러 가지를 해봐야 각각의 차이를 알게 되고 차이를 알아야 장단을 발견하고,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취향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취향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한 것을 훈련하여 발현시키는 것이다. 표준화된 맛의 프랜차이즈가 지배한 골목에선 취향이 발생하지 않는다.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표준을 주입할 뿐이다. 그것이 힙이나, 유행, 패션, 핫플 같은 외피로 꾸며진다고 해서 그것이 취향이 되진 않는다.

표준화된 시장에서 강요를 선택으로 착각하는 삶은 자기의 얼굴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달걀귀신의 세계와도 같다. 동어반복의 영화와 음악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볼수록 더 많이 열광하는 것을 자기의 취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세계를 확장하여 선택지를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이것과 저것 중 하나만을 고르는 세계를 만든다. 맥락을 고려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고 그것을 엘리트주의라 비판하게 된다.

몰취향이 잉태하는 것은 어쩌면 반지성의 사회다. 이는 '대중이 선택한 것이 오직 옳은 것', 그보다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이 오직 옳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알리바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중, 소비자는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을 강요받았을 뿐이지.

몰취향의 강요를 개취의 선택으로 착각한 결과 새마을식당에 줄을 서고, <해운대>를 천만관객이 보고, 영화평론에 명징, 상승, 직조라는 단어를 썼다고 엘리트주의라 비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도 취향이라고 다양성이라고 우기는 반지성의 시대를 만들었다. 취향을 만들지 못해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거대한 한 개의 자본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도 그것을 유행에 충실한 힙스터(이건 정말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같은 말이다. 유행 타는 힙스터라니)라고 말하는 지루한 사회를 만들었다. 몰취향의 문제는 사실 떡볶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에 '취향' 같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똑같이 머리를 빡빡 밀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생각을 강요받으며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노래를 들으며 똑같은 독재자를 찬양하며 사는 나라에 취향 같은 건 가당치 않았다. 취향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학교 현관엔 현관문보다 큰 글씨로 단결과 통일이라고 적힌 액자가 붙어 있었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폭력과 야만의 자리는 자본과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몰취향의 시대.

그리하여 백종원 게임이 가능한 건 백종원이 정말 모든 음식의 레시피를 공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음식 종류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취향이 없는 우리들. 당신의 소울 푸드를 무시하는 황교익도, 마가린이든 설탕이든 다 때려넣고 잘 팔리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는 백종원도 틀렸다. 그들은 이 몰취향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네이버 검색해서 나오는 맛집이면 다 맛있다고 여기며 더는 고민하지 않는 게으른 당신과 나는 이 몰취향의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사유하고 노력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많이 먹어보고, 더 많이 듣고, 보고, 감각하고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발생한 것들을 갈고 닦아 다시 발현하는 것. 어렵고 지루하고 고단한 일.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면, 더 좋은 세계를 더 다양하게 살고 싶다면 그 정도 노력은 해내야 한다. 그래도 백종원 프랜차이즈에서 1시간 30분 대기하는 것보단 쉬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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