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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지배적 시스템 지키려 기득권된 언론의 모습"

정철운 기자 입력 2021. 10. 28. 13:18 수정 2021. 10. 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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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 저널리즘 주간 기조연설 "미디어의 파편화, 진실의 개인화 시대…정론의 언론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증명해야"
"시민사회가 극단주의 경계해야 언론도 제 기능 할 수 있어" 꼬집어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손석희 전 JTBC 메인뉴스 앵커가 2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저널리즘 주간 본행사에서 '다시 일상으로, 다시 저널리즘의 본질로'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 나섰다. 지난해 1월 신년토론을 끝으로 '뉴스룸'을 떠난 이후 공개적인 연단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석희는 이날 “언론학을 공부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문지기론이다. 우리는 기자들을 정보의 문지기, 게이트키퍼라 부른다. 그 위에는 미디어라는 조직이 있다. (그런데) 갈라져 있는 세상 속에서 이러한 기초적 언론학 이론이 통할지 의문”이라면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문지기들이 오래된 고궁의 문지기처럼 실제 역할을 한다기보다, 구경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우려와 고민을 해봤다”고 전했다.

손석희는 “텔레비전은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스러져 가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저널리즘이 익숙하지 않을 때도 많다. 미디어의 파편화라던가, 진실의 개인화라든가, 그에 따른 확증편향 시대라던가, 그런 것에 익숙치 못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한 뒤 “과거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포스트 트루스(탈진실)라는 디지털화된 명칭으로 우리가 갖고 있던 기준을 해체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저항이 요체였던 것 같은데, 당시 매스미디어에 대해서도 정보를 분배하는 전통적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 속에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언론이 제공하는 진리는 없다고 했었다”고 소개한 뒤 '포스트 트루스'라는 포스트모너니즘의 디지털 버전이 확산된 가운데 영향력이 감소한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심지어는 불신의 대상이 되고, 적대적 상대가 돼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손석희는 “개인은 기존 언론에 대항하는 수단을 갖게 되었고, 유튜브는 대표적인 저항의 무기가 된 상황”이라며 이러한 과도기적 국면에서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저널리즘의 미래를 비관하지는 않았다. 손석희는 “100년 전에도 저널리즘의 가장 큰 화두는 정파성과 상업성이었다. 그 시대에도 정파적이고 선정적인 언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면서 “지금 시대에도 정론의 언론은 필요하다. 결국 정론의 언론들도 살아갈 길을 찾을 것”이라고 애써 긍정했다.

손석희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언론에게 어떤 길을 택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지만, (지금은) 정론의 언론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다른 언론도 그것을 추구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우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저널리즘과 본래적 의미의 저널리즘을 맞바꿔 살아남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으나 그런 저널리즘은 이미 무료로 공급되고 있다”면서 “정말 중요한 기사라면, 마땅히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소비해줄 시민사회가 우리에겐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석희 전 JTBC 메인뉴스 앵커. ⓒJTBC

그러면서 그는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할 수는 있지만,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저널리즘 원칙을 소개하며 “이것은 아마 MBC노조에 있을 때부터 가졌던 생각인 것 같다. 여러 사회적 모순 속에서 정론 저널리즘을 할 수 없다면 그 저널리즘을 위해 분노할 수 있지만 거꾸로 우리의 저널리즘이 정치화되어서, 정치경제 권력과 한 몸이 되어 운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임을 강조했다.

'손석희의 JTBC'는 △아젠다키핑 △맥락저널리즘 △팩트체크를 국내 언론계에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기조연설에선 특별히 '아젠다키핑'을 강조했다. 손석희는 “아젠다를 세우는 것은 언론의 기본 역할인데,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필요한 의제가 있다면, 그것을 지켜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아젠다키핑를 어렵게 하는 요소로 △미디어의 영향력 △사회적 공감대 △보다 강력한 아젠다의 등장 △피로감을 꼬집었다. 그는 “과거 200일 넘게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며 (아젠다키핑이) 굉장히 힘든 작업이라 생각했다”고 전한 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면 결국 기억되고, 그럼 새로운 감정과 논리 속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공분을) 일으켜 세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이어 몇 년 전 알랭 드 보통과 인터뷰에서 그가 '편향을 무서워해선 안 된다, 완벽한 무편향은 있을 수 없으니 좋은 편향이 어떠냐'고 제안했다면서 “이미 문지기에 의해 편향은 발생한다. (나는 보통의 제안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고 밝혔다. '좋은 편향'을 위해선 '좋은 의문'이 필요하고, 좋은 의문을 위해선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언론이 주요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손석희는 “예전에 토론을 진행할 때 '저는 좌우 상관없이 인본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인본주의가 좌파의 기본'이라 하더라. 그래서 내가 '우파도 기본은 인본주의'라고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를 지키는 게 쉽지 않다”고 전했다.

후배 언론인들을 향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매우 지혜롭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극단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으며 “시민사회가 극단주의를 경계해야만 언론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장국 저널리즘'(강준만)으로 불리는 진영언론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뉴스이용자를 향해서는 “적어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날 수 있고, 때로는 매우 용감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좋은 저널리즘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석희는 이날 '이미 기득권이 되어 있는' 언론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부 언론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미 지배적 시스템이 된 사회구조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나. 만일 그것이 깨지면 자신들의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것이 기득권이 된 언론의 모습이다. 여기에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가짜뉴스들이 미디어 생태계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자고 우리가 모인 것이다.”

▲2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저널리즘 주간 본행사에서 '다시 일상으로, 다시 저널리즘의 본질로'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 나선 손석희 전 JTBC 메인뉴스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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