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제발 오지 말라" 광주 시민들 반발하는 이유..슬픈 경험칙

박준배 기자 2021. 10. 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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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세례·봉변 유도 등 정치적 악용 우려..광주는 또다시 고립
박승춘·황교안도 5·18묘지 참배 강행..봉변 당하고 웃기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30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시 당원·선거대책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1.10.30/뉴스1 © News1 남승렬 기자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진 등으로 논란을 빚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11월초 광주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진정어린 사죄를 하겠다는 게 윤 후보 측의 입장이지만 광주에선 "제발 오지 말라"며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죄하겠다는 데 말리는 다소 황당한 풍경. 그 이면에는 광주의 슬픈 경험칙이 있다.

31일 지역정치권에 따르면 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투표가 시작되는 11월2일 광주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윤 후보가 직접 광주를 찾아 5·18민주묘지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어 그간 논란을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는 지난 19일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며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예시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사과하면서도 자신의 SNS에 '개 사과' 사진을 올리면서 전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것'이라며 민심이 들끓었고 윤 후보의 지지율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후폭풍이 거세자 윤 후보가 직접 광주를 방문해 진정어린 사죄를 하겠다는 것이다.

송기석 윤석열 캠프 광주선거대책위원장은 "11월2일 광주 방문을 논의 중"이라며 "윤 후보가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진심어린 행동으로 지역민 가슴에 와닿을 수 있게 사죄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송기석 윤석열 캠프 광주선거대책본부장을 비롯한 호남지역 직능인들이 28일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2021.10.28/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하지만 지역의 반응은 차갑다.

'보여주기식 방문으로 보수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 '일부러 계란 맞으러 광주를 찾는것', '봉변 당하려고 오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치적으로 악용할 게 뻔하니 '제발 오지 말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광주가 반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이 정치적 위기 때 광주 방문을 강행해 물세례나 봉변을 당하고 여론을 전환시키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를 둘러싼 갈등 정국이 대표적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윤상원 시민군 대변인과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중 숨진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해마다 5·18민중항쟁 기념일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다.

1997년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는 정부 공식 행사에서 제창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2009년부터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제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대신 합창하도록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아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했다. '제창 금지' 논란의 당사자가 당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었다. 박승춘은 광주의 거센 항의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를 고수했다.

광주에선 유족들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고 박승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수년간 갈등을 빚었다.

박승춘 처장은 지역 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념식 참석을 강행했다. 2016년 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 참석했다가 5·18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쫓겨나며 웃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에서 행사장에 참석하려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5월 유가족의 항의를 받고 기념식장을 떠나고 있다. 2016.5.18/뉴스1 © News1 손형주

2019년 5월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도 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 참석을 강행하면서 봉변을 당했다.

이른바 '5·18 망언'을 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등 '망언 3인방' 의원들을 솜방망이 처벌을 한데다 5월 초 광주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국가를 만들려고 한다"고 연설하는 등 호남 민심을 자극한 직후였다.

당시 유시민 노문현재단 이사장은 "황 대표가 '5·18망언' 의원 중징계 없이 기념식에 오는 것은 얻어맞고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물병 대신 등을 돌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아무런 사과 없이 기념식장 참석을 강행했고 여지없이 물병과 의자가 날아들었다. 황 대표는 예견한듯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꿋꿋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립5.18민주묘지 입구를 들어서다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9.5.18/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봉변'을 당하는 모습이 연출될 때마다 광주는 '7시' '라도' '홍어' 등 온갖 '일베식 조롱'을 당하며 매도됐다.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광주에서 당하는 모습을 보며 결집했다.

윤석열 후보의 광주 방문 강행 움직임도 '뻔한 의도'라는 건 이같은 기억에 따른 것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계란 맞으러 오는 것이고 봉변당하러 오는 것으로 광주에서 탄압 받는 모습을 보여 보수진영을 결집시키려는 것"이라며 "윤 후보는 광주 방문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또 "과거에도 봉변당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부각시켜 다른 곳에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광주시민은 그런 데 넘어가지 않는다"며 무대응을 당부했다.

그러나 무대응 원칙을 지키자고 해도 봉변이 발생하는 것 역시 경험칙이다.

이 시장은 "자작극인 경우도 있다"며 "윤 후보가 광주에 안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만약 온다면 유리한 상황을 도출하기 위해 연출하지 못하도록 경찰로 하여금 윤 후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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