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글씨 가로선 길고 우상향.. 필체 바꾸면 인생 달라질 수 있어" [차 한잔 나누며]

조성민 2021. 10. 31. 2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1호 필적학자 구본진 변호사 '부자의 글씨' 펴내
檢 거치며 범인·친일파 서체 주목
인격 연관성 깨달아 필적학 몰두
긴 가로선 '인내심' 우상향은 '긍정'
정주영·스티브 잡스 글씨 최고 꼽아
하루 30분 8주 연습 땐 성향 변화
국내 1호 필적학자 구본진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가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부자들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부자들의 글씨에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국내 필적학 선구자인 구본진(56) 로플렉스 대표 변호사는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병철, 정주영,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등 세계 최고 부자들의 글씨를 분석해 보니 공통점과 부자 되는 성향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15년간 2000명 넘는 사람의 글씨를 연구한 전문가로, 최근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필체를 최초 분석해 ‘부자의 글씨’라는 책을 내놨다.

먼저 부자들의 글씨는 대체로 가로선이 길고 우상향의 형태를 보인다. 가로선이 길다는 것은 인내심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우상향의 글씨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구 변호사는 설명했다. 글씨 쓰는 속도가 빠르면 두뇌활동이 빠르고 활력이 있다. 또 마지막 가로선이나 세로선을 꺾는 글씨는 결단력, 책임감을 갖추고 있어 일처리의 마지막 부분을 야무지게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ㅁ’자의 마지막을 굳게 닫는 것은 절약 혹은 일의 완성을 신경 쓰는 것이다. 그는 “이런 특징들은 부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이번에 분석한 부자들 35명 가운데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과 애플 공동 창업자이자 전 CEO 스티브 잡스의 글씨를 최고로 꼽았다. 그는 “정주영은 인내심, 일의 완성, 결단력, 책임감, 절약, 열린 사고 등 다양한 부분에서 탁월한 글씨를 갖고 있다”면서 “부자를 떠나 20세기 최고의 글씨라고 본다”고 극찬했다. 한두 가지가 특출난 것이 아니라 상반된 특성까지도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골고루 좋은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는 것이다. 잡스 역시 모든 특성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글씨체를 갖고 있어 최고 수준의 성공 가능성을 갖췄다고 평가됐다.

구본진 변호사가 최고의 글씨로 꼽은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글씨. 다산북스 제공
구 변호사가 이토록 글씨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수십년 전 떠오른 어떤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등을 거치며 20년 넘게 강력범을 상대해온 그는 “각종 자필 진술서를 받던 중 정말 특별한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며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글씨를 보면서 글씨와 범죄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수집하면서 글씨와 인간성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의 친필을 1100여점 이상 모았고,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가 서로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필적학에 깊이 몰두하게 됐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서적을 찾아보며 연구하기 시작해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 회원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개인적인 관심으로 독학한 필적학이지만, 그는 이제 국내외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2017년 10월 국방부는 그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글씨 분석을 요청했다. 2018년 6월에는 영국 로이터통신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직접 서명한 김정은의 필체에 대한 그의 분석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구본진 변호사가 최고의 글씨로 꼽은 애플 공동창업자이자 전 CEO 스티브 잡스의 글씨. 다산북스 제공
글씨는 연습을 통해 바꿀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내면도 바뀐다는 게 구 변호사의 지론이다. 그는 “서예, 서법, 서도 등 동양에서는 몇 천년 동안 글씨 연습을 인격 수양의 도구로 삼아왔다”며 “서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글씨는 그 사람을 닮았다’고 하는 등 고대부터 글씨가 인격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매일 20∼30분 정도 6주에서 8주 정도 연습하면 글씨가 바뀌고 성향이 바뀔 수 있다”면서 “특히 글씨 연습은 돈이나 장소 등 여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키우고 싶은 자질에 따라 맞춤으로 수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쉬운 글씨 연습 방법으로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의 글씨를 따라 해보라고 추천하며 “링컨도 벤저민 프랭클린의 글씨를 따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글씨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커졌다. 그는 “우리나라는 글씨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서예에만 치중하다 글쓰기가 생활에서 분리돼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손글씨가 사라지며 연구도 안 하고 분석도 안 한다”며 “게다가 서예는 한자를 가지고 했던 것이기에 한자 사용이 줄면서 더 빠르게 쇠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글에 한국 사람들의 내면이 반영되기 때문에 한글 글쓰기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습자 교과서를 내는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좋은 글씨체를 연습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며 “그리고 그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한글에 맞는 필적학책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