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만 있는 집 문따고 들어오려 해" 반포 재건축 단지에 무슨일이..

이정원 2021. 11. 1.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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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앞둔 반포주공 최종 이주기한 내년 5월인데
공가 딱지·CCTV·불매 리스트.. 강압적 분위기 조성
세입자들 불안.. 구청 "이주 관리는 조합 재량" 뒷짐
재건축이 확정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공가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해당 호수가 적힌 주차 구역엔 빨간 페인트로 엑스자(X) 표시가 칠해져 있다. 이정원 기자

"이주 기한이 내년 5월인데 벌써 문을 따고 들어오고, 아이들이 다 보는데도 공가(空家·사람이 살지 않는 집) 스티커로 온 단지를 뒤덮는 게 맞는 일인가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40대 여성 김모씨는 지난달 13일 밖에서 일을 보던 중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집에서 학원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던 12세 큰아이가 "누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한다"며 전화를 건 것이다. 9세 막내의 울음소리 뒤로 "아저씨가 열고 들어갈 거야"라는 낯선 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놀란 김씨는 인근 파출소에 신고해 낯선 이들의 침입을 저지한 뒤 급히 집으로 향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김씨는 분노했다. 찾아온 이들은 단지 재건축을 앞두고 김씨 집안에 '이주 고시'를 붙이러 온 법원 집행관과 재건축조합 인부들이었다. '재건축 허가가 났으니 언제까지 집을 비우라'는 내용이 담긴 부착물이었다. 김씨가 "사전에 연락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조합은 "법대로 했다"고 대응했다. 만약 김씨 자녀들이 집에 없었다면 '빈집'으로 간주해 강제로 문을 열었더라도 법에 저촉될 게 없다는 게 조합 측 입장이다. 김씨는 "재건축 승인이 난 직후부터 단지가 쑥대밭이 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내년 5월이 기한인데… 막무가내식 이주 종용

재건축 이주 절차와 관련된 민원이 서초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김씨가 살던 아파트 구역은 올해 7월 서초구청으로부터 재건축 관리처분계획을 승인받았다. 조합은 세입자들에게 최종 이주 기한을 내년 5월로 고지했지만, 세입자들은 "조합 측이 기한과 무관하게 이주를 종용하면서 기본 거주권조차 침해받고 있다"며 항의하고 있다. 김씨는 "이주 동의를 했는데도 모멸감이 들 정도로 압박하는 행태를 납득할 수 없다"며 "횡포에 못 이겨 결국 인근에 전세를 구해 거처를 옮겼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에도 관련 민원이 쇄도하면서 구청 홈페이지에는 '마지막 이주자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등의 글이 게시돼 있다.

지난달 29일 찾은 이 아파트 단지엔 기존 관리실 폐쇄회로(CC)TV 외에도 별도의 소형 CCTV들이 군데군데 부착돼 있었다. 한 주민은 "조합에서 '충돌 상황'을 대비해 붙여놓은 거라고 했다"면서 "안 나가겠다고 시위를 하는 사람도 없는데 정작 충돌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재건축 승인 3개월 만에 이주율 30%를 달성했다는 단지 상황을 보여주듯 빈집 앞엔 빨간 '공가'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10년 넘게 이 아파트 상가에서 카센터를 운영해온 A씨는 "단골손님으로 친했던 이웃들이 재건축 허가를 기점으로 완전히 갈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인근 상가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받은 것"이라며 보여준 휴대폰 문자메시지에는 '재건축을 늦게 하면 손해를 끼치게 된다' '빨리 이주하는 상가 소유자에겐 (조합에서) 월 400만 원씩 지불한다고 하니 사장님이 400만 원을 매월 지불하시든가 이주를 서둘러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임대인이 조합 요구를 이유로 가게를 비울 것을 종용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A씨는 이 같은 모멸감을 견딜 수 없어 최근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결성했으나, 이에 조합은 '상가 불매운동 리스트'를 조합원들에게 돌리며 대책위에 소속된 상가에 방문하지 말 것을 독려했다.


구청 "이주 관리는 전적으로 조합 재량"

이주 과정 관련 민원에 대한 서초구청 답변. 이정원 기자

세입자들은 전세난으로 대체 거주지를 찾기 힘든 현실을 조합 측이 외면하고 있다면서, 무리하게 재건축 허가를 내준 구청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주민 B(45)씨는 "서초구 일대가 거의 다 재건축인 상황이라, 아이들 학교를 고려해 인근에 집을 알아봐도 매물이 없다"며 "우리 구역 세입자들이 얼마나 급한지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부동산에 가서 ○○구역에서 왔다고 말하면 바가지 쓴다'는 말까지 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옆집이 이사를 가면 아이가 '저 집에도 이제 빨간 딱지 붙냐'고 물어본다"며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제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은 "재건축 인가 후의 이주 관리는 조합 재량"이라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낮시간 동안 집행관이 (퇴거 여부와 무관하게) 빈집 문을 열고 고시를 집행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이주 과정과 관련된 상세 규정이 없는 터라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구청에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 ‘막무가내 이주’ 논란> 관련 반론보도

본보는 지난 11월 1일 <“애들만 있는 집 문따고 들어오려 해” 반포 재건축 단지에 무슨일이…> 제목의 기사에서 반포아파트(제3주구)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세입자를 대상으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주를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반포아파트(제3주구)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조합은 법원집행관이 집행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고, 조합의 이주 진행은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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