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보다 빠른 조선초기 금속활자 등 1755점, 파편 한조각까지 전시(종합)
3일부터 12월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공개전
(서울=뉴스1) 윤슬빈 기자 = "인사동 출토유물에 대한 국민들의 많은 관심이 있던 만큼 파편 한조각까지 전시했습니다. "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빠른 조선 초기 금속활자를 포함, 조선시대 주요 금속 유물 1755점을 오는 3일부터 12월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 유물들 모두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에서 발굴된 것이다.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 관장은 2일 공개 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유물'이라는 점과 '다양한 감각을 충족하는 전시'를 만드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전시의 시작과 마지막은 발굴터의 모습을 재현하고 현장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며 "크기가 작은 금속활자 유물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보조 장치를 마련하고, 모형이지만 활자의 재질을 만져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월 발굴 당시 눈길을 끈 것은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였다. 여기에 한자 금속활자 '갑인자'(1434, 세종 16년)가 다량 확인된 것도 유례없는 성과였다. 발굴 금속활자 중 일부가 갑인자로 확인되면서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한 구텐베르크(1450년경)보다 이른 시기의 금속활자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발굴 당시에는 갑인자로 추정된다고 봤고, 이후 국립고궁박물관은 해당 금속활자들이 갑인자임을 공식 확인했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우리의 금속 유물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대 가장 앞선 과학기술로 이번 발굴은 크게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뿌리 깊은 전통을 토대로 만들어졌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에선 당시 화제를 모았던 갑인자를 포함, 1600여점의 금속활자들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구성은 Δ1부 '인사동 발굴로 드러난 조선 전기 금속활자' Δ2부 '일성정시의와 조선 전기 천문학' 등 총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한 점의 깨진 도기항아리가 등장하는데, 발굴 당시에 금속활자들이 담겨 있던 그릇이다. 그릇을 지나면 제작 시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갑인자, 을해자, 을유자, 동국정운식 한자음 한글 활자, 미분류 활자 등 1300여점의 활자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조시기를 알 수 있는 활자는 갑인자 48점, 을해자(1455, 세조 1년) 42점, 을유자(1465, 세조 11년) 214점이다. 활자 중 '火'(화)·'陰'(음) 두 글자는 갑인자로 찍은 '근사록'(近思錄)(1435, 보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 두 글자를 포함해 형태와 모양이 같은 활자 48점을 골라 책자와 함께 전시했다. 을해자와 을유자로 확인된 활자는 각 '능엄경'(1461, 보물, 서울역사박물관 소장)과 '원각경'(1465, 보물, 호림박물관 소장)에 찍힌 글자를 확인했고, 해당 활자들이 을해자와 을유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글 금속활자는 훈민정음 창제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다.
전시된 금속활자를 관람객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전시장 여러 곳에 확대경과 사진을 담은 휴대용컴퓨터를 비치했다. 또한, 주조를 담당했던 '주자소 현판'과 조선 시대 활자 주조의 연혁이 적혀 있는 '주자사실 현판'도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유물들을 소개한다,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다. 1437년(세종 19)에 국왕의 명으로 처음 제작된 주야겸용 시계로 중국에서 전래된 혼천의와 간의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크기를 소형화한 시계다. 낮에는 해 그림자로, 밤에는 별을 관측해 시간을 측정하던 기구다.
이상백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비록 3개의 고리 중 한 개는 일부만 출토됐지만, 그동안 기록으로만 확인된 '일성정시의'의 실체를 최초로 발견했다"며 "흥미로운 점은 이전까지 실체가 없어 사각으로 표현했던 손잡이가 구름 모양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성정시의의 사용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박물관 소장품인 '소일영'(小日影)을 전시했다. 영조(재위 1724~1776)의 어제시가 새겨진 해시계인 소일영은 눈금표가 새겨진 둥근 고리와 받침대, 석제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를 한꺼번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에 직사각형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자동 물시계 부속품인 '일전'(一箭)을 볼 수 있다. 자동 물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이 있는데, '일전'은 바로 그 인형을 작동시키는 구슬을 방출하는 부품이다. 이 일전이 자동물시계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를 담은 영상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사동 발굴 현장의 하루와 발굴 참여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영상도 공개한다. 음악가 박다울씨가 이번 전시를 위해 출토 유물과 유적의 의미를 담은 곡을 직접 작곡해 공개해 특별함을 더한다.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록과 온라인 콘텐츠도 제공한다. 도록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직접 내려받을 수 있다. 11월 둘째 주부터는 인사동 발굴 이야기를 담은 영상, 전시해설 영상 각 1편을 문화재청과 박물관 유튜브로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실 전경, 유물설명, 사진을 제공하는 가상현실(VR) 콘텐츠도 제작해 공개할 예정이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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