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테니스장이 동호회 땅? 문잠그고 회식하던 그들, 재판서 결국..

이가영 기자 2021. 11. 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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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처지 분당 아파트 단지 20여곳
"주민들 권리 찾기 확산세"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한양1단지에 있는 테니스장을 테니스 동호회가 회원들만 이용 가능하도록 자물쇠로 잠가뒀던 모습(왼쪽)과 지난달 31일 주민들에게 개방돼 벼룩시장이 열린 모습. /독자 제공

지난달 30~31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한양아파트의 ‘옛 테니스장’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돗자리를 깐 주민들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게 된 물건들을 팔았다. 가격은 대개 5000원을 넘지 않았다. 금세 크는 아이들의 옷이나 장난감 등에 대한 판매가 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공간을 주민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벼룩시장에 참여한 양지마을 주민 홍모(40)씨는 “이사 온 지 3~4년이 되도록 이곳이 아파트 주민들 땅인지도 몰랐다”며 “이곳에서 운동하고, 인사하면서 이웃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28년 전부터 테니스장 관리해온 테니스 동호회, 계약된 권리가 없었다

1일 양지한양1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 따르면 1992년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테니스장도 함께 만들어졌다. 최근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헬스장을 만드는 것처럼 당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는 사교 스포츠로 인기 있던 테니스장이 마련됐다고 한다. 이후 20년 넘게 테니스장은 테니스 동호회가 관리해왔다. 출입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주민들이 테니스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동호회에 가입해 회비를 내야 했다. 테니스 레슨비도 요구했다고 한다. 양지한양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외부 동호회가 계약 등을 통해 테니스장에 대한 권리를 가진 줄 알았다”고 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조선닷컴에 “2019년 5월쯤 저곳이 주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이었단 걸 처음 알았다”며 “지금껏 테니스 동호회가 누리던 것들이 그들의 권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단지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95% 찬성으로 테니스장을 다른 시설로 변경하기로 결의했다.

양지한양1단지 주민이 사유화된 테니스장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호소하는 글. /독자 제공

◇재판부 “100명 동호회원 중 주민은 10여 명”

입주자대표회의는 2019년 11월 “입주자들의 테니스장 이용률이 극히 저조하니 입주자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겠다”고 알린 후 이듬해 2월부터 동호회원들의 테니스장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자 테니스 동호회 측은 법원에 테니스장 사용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5부는 입주자대표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테니스 동호회 회원들이 야간에 테니스장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떠들고 술을 마신 일이 발생했고 ▲입주자들이 주차공간 부족으로 주차난을 겪게 됐으며 ▲총 100여 명의 동호회원 중 입주자들은 10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결정을 계기로 입주자대표회의는 테니스장을 되찾았고, 배드민턴장과 축구 골대, 철봉 등을 설치해 주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적 다툼은 이어지고 있다. 테니스 동호회가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법적 다툼…동호회 “손해 배상하라” vs 주민 측 “각서 있다”

2007년 테니스동호회와 양지한양아파트1단지 입주자대표회의가 서명한 각서. /독자 제공

테니스 동호회 측은 “2018년 5900만원 정도를 들여 테니스장 개보수 공사를 마쳤으며 입주자대표회의가 코로나를 핑계로 폐쇄했다가 일방적으로 단전, 단수조치를 하는 등으로 테니스장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해 사용계약을 위반했으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2007년 테니스 동호회가 서약한 각서를 근거로 반박했다. 각서에 관리권을 입주자대표회의가 갖는다는 점과 개보수 등 테니스장과 관련된 경우 동호회가 비용을 부담하며 시설 변경 등을 이유로 시설 관리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우리는 분쟁을 원하는 게 아니다”며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테니스 동호회가 차지했던 테니스장을 이제는 정당한 소유권이 있는 주민에게 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분당구 다수 아파트 단지가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점이다. 김명수 성남시의원에 따르면 1기 신도시 때 조성된 분당 아파트 단지에 25개의 테니스장이 설치됐으며 현재 90% 이상을 테니스 동호회가 장악하고 있다. 김 의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공체육시설에 대한 주민의 요구는 늘어났는데 테니스장을 이용하는 주민의 비율은 얼마 되지 않으니 이 넓은 땅을 주민들이 같이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많은 아파트 단지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고, 양지한양1단지에서 시작된 주민 권리 찾기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주민들이 자신의 재산을 찾겠다는 움직임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고, 성남시청이나 구청 등 담당행정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양지한양1단지 주민들이 테니스장을 찾도록 도왔다고 했다. 다만 사유 재산인 만큼 시가 먼저 나서 이를 정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 의원은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의견 정리가 되면 저는 행정적으로 최대한 도와드리겠다”며 “테니스 동호회원들을 위한 공공운동시설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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