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턴기자' 주현영 "목소리 경직,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20대 격려를"

유경선 기자 입력 2021. 11. 8. 17:52 수정 2021. 11. 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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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긴장의 언어’ 인턴기자 말투 완벽 재현
앵커 질문 퇴장 여성 ‘무능 프레임’ 지적엔
“남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특징”

여야 대선후보 인터뷰 코너 어려움 토로
“감 잡기 힘들었지만 선입견 버려 좋은 결과”

인턴기자 캐릭터 연기 스스로 위로 받아
“유대감 느껴···공감 주는 배우 되고 싶다”

배우 주현영.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에서 주현영 인턴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김영민 기자


배우 주현영은 과연 ‘인턴기자 주현영’과는 달랐다. 말간 얼굴을 가진 배우 주현영은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면서도 명료하게 말할 줄 아는 멋진 20대였다. 뛰어난 연기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고, 흐트러짐 없는 문장으로 질문들에 답했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주현영 인턴기자를 연기한 주현영을 8일 이 프로그램 제작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 에이스토리에서 만났다.

주현영 인턴은 대중에게 20대 사회초년생의 말투와 몸짓을 각인시켰다. 어떻게든 잘해내고 싶어 온몸으로 쓰는 안간힘이 배우 주현영(25)의 몸을 통해 표현됐다. 주현영의 이 연기가 20대의 사회적 처지를 다시 조명했다. 초반에는 여성을 잘못 그려낸 콘텐츠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주현영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며 영리하게 대처해냈다. 그리고 성공한 인턴이 되어 ‘주기자가 간다’ 코너로 현실의 여야 대선후보들을 만났다. 정치인들의 말을 듣는 20대의 표정을 재치 있게 그려냈다.

주현영은 인턴기자 주현영의 말투가 ‘긴장의 언어’였다고 했다. 이 긴장의 언어를 재현하는 데는 tvN에서 방송됐던 <대학토론배틀>이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대학생들의 어투를 잔뜩 볼 수 있었다. 긴장되고 두렵지만 반드시 잘해내고 싶은, 인턴기자 주현영의 바로 그 말투였다. 그걸 따라하다 보니 “몸이 저절로 긴장되더라”고 주현영은 말했다.

“목소리를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말로 성대 근육이 경직되더라고요. 숨도 잘 안 쉬어지고요.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있다 보니까 가짜 목소리를 만들게 되고, 몸이 굳어지고, 떨렸어요. 눈물도 났고요. 도태되면 안 된다는 마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경직 상태가 유지되는 거죠.”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 배우 주현영이 연기한 ‘인턴기자 주현영’의 모습. 쿠팡플레이 제공


상사인 안영미 앵커의 기습 질문에 대처하는 방식도 토론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계획에 없던 방해가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을 못 하잖아요. 모르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려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질문? 지적? 암튼 감사합니다”는 그렇게 탄생한 명대사다. 주현영은 “상대는 질문을 한 거지만 난 지적처럼 들리니까 ‘질문 감사하다’는 말에 지적이라는 단어를 끼워넣으며 비꼬려는 어린 마음, 그 서운함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고야 마는 모습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주현영 인턴기자는 첫 방송분에서 앵커의 질문세례 끝에 울먹이면서 퇴장했다. 그러자 여성에게 ‘무능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란 지적이 일었다. 이후 주현영은 발전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이 논쟁을 걷어냈다. 성장형 캐릭터를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울면서 퇴장하는 건) 남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특징이잖아요. 제가 여자라서 논란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회차를 거듭하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보려고 하고, 더 부딪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재밌겠다고 판단했어요.”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 배우 주현영이 연기한 ‘인턴기자 주현영’의 모습. 쿠팡플레이 제공


주현영은 정극배우로 먼저 얼굴을 알렸고, 대학에서는 연극을 전공했다. 희극은 늘 마음 한쪽에 자리잡은 꿈이었다. “희극 극단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고, 가면극이나 슬랩스틱에 관심도 많았어요.” 한편으로는 “사람 웃기는 걸 좋아하니 개그우먼 시험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진로 고민이 깊어졌다. 마침 그 시기에 SNL 코리아 오디션 공고가 떴다. 오디션 마지막 날, 거의 마지막 순서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람에게는 다 다중의 인격이 있잖아요. 사회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그 뒤에는 숨겨둔 진짜 속마음과 본능이 있죠. 코미디는 그걸 불편하지 않게,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 좋아요.” 희극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한 주현영은 개그콘서트의 ‘사랑의 카운슬러’와 ‘분장실의 강선생’ 코너, 홍콩 배우·감독 저우싱츠(周星馳)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존경하는 희극인으로는 안영미와 강유미를 꼽았다.

주현영은 “안영미 선배님과 SNL 촬영을 할 때마다 꿈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두 손을 모은 채로 말했다. 강유미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건넨 적도 있다고 했다. “대학로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신 걸 본 적이 있어요. 쪽지에 ‘전 연기 공부하는 학생인데 정말 팬이다, 유튜브 채널을 잘 보고 있다, 제발 그만두지 말고 계속 해달라’고 적어서 전달하고 도망치듯 나왔어요. 우상 같은 분이에요.” 안영미는 주현영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매회 방송이 끝날 때마다 ‘현영이 오늘 너무 잘했어’라는 말을 꼭 해주셨어요. 제가 잘 못한 것 같다고 해도 아니라고 정말 잘했다고 해주시고요. 뭘 하든 정말 든든했어요.”

최근 여야 대선후보 이재명·윤석열·심상정·홍준표를 인터뷰 한 ‘주기자가 간다’ 코너는 주현영이 보여준 또 하나의 히트작이다. 주현영 인턴기자가 특유의 뻣뻣한 모습으로 후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시나 ‘잘해내고 싶은’ 그는 인터뷰어의 행동 매뉴얼을 곧이곧대로 준수하는 데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인다. 준비한 질문들을 반드시 모두 소화해야 하고, 후보들이 너무 길게 답변하지 않는지 감시해야 하며 “답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어서도 안 된다.

이런 부분이 웃음을 유발한다. “살살 하실 거죠”라고 묻는 이재명 후보에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기 나와있는 대로만 질문을 드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 후보에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수라> 중 뭘 볼 것이냐는 송곳 질문도 던진다. 윤석열 후보 인터뷰에선 그가 늘어지는 답변을 하자 “간략하게 말씀해달라” “그래서 어떻게…?”라고 가차없이 응대한다. 지나친 ‘셀프 상찬’이나 능글맞은 모범 답안에는 카메라를 향해 억지 웃음을 지으며 “감사하다”고 한다. 표정 자체가 현재 20대가 정치를 보는 시선을 담은 텍스트로 보이기도 한다.

배우 주현영이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인터뷰하고 있다. 후보들에게 미숙한 듯한 모습으로 거침 없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방송 화면 캡처
배우 주현영이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인터뷰하고 있다. 후보들에게 미숙한 듯한 모습으로 거침 없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방송 화면 캡처
배우 주현영이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인터뷰하고 있다. 윤 후보의 답변이 길어지자 간결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주현영은 이 코너를 하며 “어깨가 너무 무거웠고,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을 정도로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정치풍자가 사라졌다는 탄식이 앞다퉈 나오는 상황에서 주현영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대선후보를 너무 희화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진중하기엔 코미디의 의미가 없었다. 정치에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 했다.

그는 “이미지를 보기 좋게 포장하거나 말도 안되게 깎아내리는 행동을 하거나, 양쪽 사이 어느 지점을 찾아야 했다”며 “어느 선에서 유지해야 하는지 감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현영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서도 안 됐다. 그는 “(후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주현영) 캐릭터로만 임하니 결과물이 좋게 나왔다”고 했다. 또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마지막 회차인 이재명 후보 인터뷰를 가장 편한 마음으로 했다. 다 내려놓고 하니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녹화를 하기 전에는 “대본을 받고 나서도 서로 다른 관점의 여러 언론 매체의 영상을 보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주현영 인턴기자 캐릭터가 가진 미숙함도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정치인들의 답변을 듣고 쓴웃음을 짓는 연출은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하다가 답답하거나 속마음을 말하고 싶을 때 카메라를 보고 눈빛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카메라에 대고 SOS를 치는 것 같았는데, 그 연출이 재밌어서 이번 인터뷰에도 이용했어요.”

배우 주현영이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여야 대선후보들을 인터뷰했다. 미숙한 듯한 모습으로 거침 없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 답변을 듣는 표정으로 웃음을 안겼다. 방송 화면 캡처


인턴기자 캐릭터는 배우 주현영 개인에게도 위로를 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캐릭터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것을 보며 “내가 유별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겪는구나, 전혀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도 똑같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뿌듯하기도 하고 유대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했다.

주현영은 “일부 기성세대 분들이 인턴기자 캐릭터를 보고 ‘요즘 20대가 이래서 문제다, 쉽게 포기하고 약해빠졌다’는 말을 하셨다며 불편함을 느낀다는 2030 분들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이 보시기에 포기하고 약해빠진 모습은 (젊은이들이)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과 두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젊은이들을) 비난하기보다 북돋아주고 격려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차기작은 드라마다. 내년 상반기 넷플릭스 공개가 예정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박은빈)의 친구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주현영은 “연기하는 인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주현영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인턴 주현영처럼 잘해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게 저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뛰게 만들기도 해요. 여러 가지 의미로 저에게 자극을 주는 게 연기예요.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계속 연기를 할 것 같아요.”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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