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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을 빈다".. 이게 뭔 소리? 검색창이 난리 났다

강우량 기자 입력 2021. 11. 11. 03:54 수정 2021. 11. 1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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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 80%가 한자어.. 한자 의무교육 중단 20년이 부른 풍경

지난 2일 포털 네이버에 ‘무운’의 검색량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무운’과 ‘무운 뜻’이란 말을 사람들이 쳐 넣은 것이다.

이 검색 소동은 전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고 말한 것을, 한 방송사 기자가 뉴스에 출연해 “운이 없기를 빈다”고 잘못 해석한 데에 비판이 쏟아지면서 벌어졌다. 그 기자는 ‘무운(武運·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을 ‘무운(無運)’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무운의 뜻을 몰랐던 이들도 남몰래 스마트폰으로 해당 단어를 검색해본 것이다.

네이버 검색량 통계를 집계하는 업체 키워드사운드에 따르면, 2일 ‘무운’ 검색량은 1만2660건, ‘무운 뜻’은 2320건으로 총 1만5000건에 달했다. 회사 측은 “작년 같은 시기 이 말들의 검색량이 80여 건임을 감안하면 검색량이 200배 가까이 뛴 것”이라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지난달 경기도 국정감사에선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양 가면을 쓴 강아지 인형’을 책상에 올려놓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속성을 닮았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날 네이버의 양두구육(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름을 이르는 말) 검색량은 평소의 30배 이상인 8000여 건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을 때도, 승복 검색량이 10배 넘게 늘었다. 지난 7월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양궁 대표팀이 ‘9연패(連霸)’를 했다는 기사 댓글에는 ‘왜 우승했는데 연승이 아니고, 연패라고 하느냐’는 질문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는 한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신문·TV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를 몰라 곤란했다’고 답한 시민은 2015년 5.6%에서 지난해(2020년) 36.3%로 6배 이상 뛰었다. 응답자의 절반가량(46.3%)은 ‘수준 높은, 어려운 한자어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2000년부터 적용한 ‘제7차 교육과정’ 중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빠지면서, 이후 학창 시절을 보낸 현재의 20대는 한자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박모(26)씨는 “지난 주말 친구들과 저녁 먹고 계산을 할 때 한 친구가 ‘돈을 갹출하자’고 하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며 “다른 친구가 ‘N빵 하자’고 말하고 나서야 다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직장인 홍모(28)씨는 “회사 상조회 게시판에 누군가 부고(訃告)를 ‘옛 고(古)’로 잘못 썼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 뒤부터 한동안 부고(訃古)로 잘못 따라 쓰더라”며 “나도 똑같이 썼다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검색해보고 고쳐 썼다”고 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박사과정 학생들도 한자를 읽을 줄 몰라 고전을 해석하는 데 애를 먹는다”며 “학생들에게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자를 공부하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명사의 약 80%는 한자어다. 하지만 신조어나 줄인 말, 영어 표현을 좋아하는 흐름 때문에 한자어가 밀려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먹을 식(食) 자 하나만 알아도 식당부터 식사, 식기 등의 의미를 외우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정규 교육과정에서 1800자 정도의 기초 한자만 가르쳐 놓으면 어휘와 문해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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