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쥴리벽화 사라진 자리..'王+개사과+전두환' 벽화 떴다

김지혜 2021. 11.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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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 개사과 + 왕(王) + 장모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한 ‘쥴리 벽화’로 지난여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건물 담벼락에 또다시 윤 후보를 저격한 그림이 등장했다. 윤 후보의 언행과 그의 가족을 둘러싸고 그동안 불거진 키워드가 벽을 또 채웠다.

이른바 ‘쥴리 벽화’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건물 외벽에 또 다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겨냥한 그림이 그려졌다. 유명 그래피티 작가 닌볼트(43)의 작품이다. 김지혜 기자

유명 그라피티 작가 닌볼트(43)는 지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이 벽화를 완성했다. 닌볼트 작가는 정치색을 띤 벽화인 만큼 손상을 우려한 듯 ‘본 작품을 훼손할 경우 민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을 붙였다. 그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대선주자가 된 게 슬퍼서 이런 벽화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의가 있으면 작품으로 ‘배틀’하자”며 “덤비면 얼마든 받아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

‘쥴리 벽화’로 논란이 된 서울 종로구 관철동 건물 외벽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겨냥한 그래피티를 그린 작가 닌볼트(43). 김지혜 기자

닌볼트 작가가 벽화를 그리는 동안 곁을 지키는 남성도 한 명 있었다. 문화·예술 매니지먼트 굿플레이어의 김선달(본명 김민호·51) 대표다. 김 대표는 “건물주에게 월 30만원씩 내고 내년 6월까지 외벽을 대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물주는 쥴리벽화로 입길에 올랐던 여정원(58)씨다.

여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쥴리벽화 이후 정치색 짙은 낙서로 외벽이 지저분해진 데다 주변 골목 환경이 좋지 않아 외주업체에 관리를 맡겼다”며 “임대·임차 계약서에 ‘미풍양속을 저해하거나 법에 저촉되는 내용은 금한다’고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물주의 의도에 벗어나게 벽체를 사용할 경우 그림을 지우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닌볼트 작가와 김 대표는 건물주의 우려에도 논란의 주인공을 자처하는지, 이날 이 건물 1층에 있는 홍길동 중고서점에서 그들을 만나 벽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닌볼트 작가(이하 닌)·김 대표(이하 김)와의 일문일답.

그래피티 작가 닌볼트가 12일 ‘쥴리 벽화’로 논란이 됐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홍길동 중고서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Q : 왜 논란을 자초하나.
A : (닌)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 많이 했다. 애초 정치 이슈만 염두에 뒀던 건 아니다. 하지만 쥴리벽화 이후 이 벽 자체가 정치적 성향을 갖게 됐다. 윤 후보가 대선주자까지 됐으니 또 한 번 화두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예술인들이 본인의 작품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슈가 됐던 이 건물 벽을 빌려 작가들이 자신의 실력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부담을 느끼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닌볼트 작가가 용기를 내 참여해줬다.

문화·예술 매니지먼트 굿플레이어의 김선달(본명 김민호·51) 대표가 12일 ‘쥴리 벽화’로 논란이 됐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홍길동 중고서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Q : 왜 윤 후보인가.
A : (닌) 윤 후보의 언행이 내 감정선을 건드렸다. 논란이 된 발언들이 윤 후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사상이나 의식이 그렇게 내재해 있다는 거다. 이런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국민을 어떻게 보는 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언행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번 작품에선 내 상상력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팩트에 기반을 둔 자료를 토대로 +(더하기)와 =(등호)를 사용해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장치를 뒀다. 누군가는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비난하겠지만, 표현의 자유가 있다. 부당한 억압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즐거운 담론의 장(場)이 됐으면 한다. 예술로 싸우는 건 지향하지만, 말과 행동의 다툼은 지양한다. 쥴리벽화 때처럼 보수·진보 각 진영에서 몰려와 시끄럽게 하는 건 아예 방지할 거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옥외집회(시위·행진) 신고서를 접수하는 선수를 썼다. 여기서 집회·시위를 하면 불법으로 경찰에 연행될 수 있다.

닌볼트 그래피티 작가가 12일 ‘쥴리 벽화’로 논란이 됐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건물 외벽에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Q : 건물주가 “정치색이 강한 벽화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A : (닌) 작가라면 ‘깡’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훌륭한 시도는 실패하더라도 위대하다. 누군가는 도전하고 시작해야 발전이 있다. 다른 작가들도 이번을 계기로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김) 계약서에 ‘미풍양속을 저해하거나 법에 저촉되는 내용은 안 된다’라는 조항이 있는 게 맞다. 하지만 ‘담벼락 특공대’가 판단한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고 작품에 관해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담벼락 특공대는 지난 2018년부터 국내 예술가들과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도시재생 예술과 지역 문화 창조를 지향한다.

닌볼트 그래피티 작가가 12일 ‘쥴리 벽화’로 논란이 됐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건물 외벽에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Q : 역풍이 두렵진 않은가.
A : (닌) 받아줄 의향이 있으니 덤벼 달라. 작가로서의 삶을 사는 게 고통 그 자체인데 뭐가 무섭겠나. 근래엔 코로나로 인해 예정됐던 국내외 행사들이 다 취소되면서 경제적으로도 매우 힘든 시기를 겪었다. 가스가 끊겨 집에서 동사(凍死) 위기를 느꼈다. 라면만 먹다가 영양 불균형이 와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도 했다. 흙수저라 학연·지연 등 눈치 볼 일도 없다. 주변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들이 최소화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김) 김두한과 일본 조직폭력배가 맞붙었던 우미관 터에서 ‘아트 배틀’(Art Battle)이 벌어지길 바란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으로 경쟁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켜보는 이들이 재미를 느끼고 코로나로 침체했던 사회에 활기도 불어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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