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이 떠나며 남긴 유산..故권대희씨 '억울한 한' 풀었다

정혜민 기자 2021. 11. 1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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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 누비는 '베테랑 강력형사'..국내 첫 의료수사팀장
[인터뷰] 강윤석 서울경찰청 의료수사1팀장
강윤석 서울경찰청 의료전담팀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강력범죄수사대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1.11.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14년 '마왕'으로 불렸던 고(故) 신해철씨가 세상을 떠났다. 의사의 과실 때문이었다. 유족은 병원과 지난한 싸움을 했고 의료사망 사고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서울에 의료 전담 수사팀이 생겼다. 서울경찰청 의료수사팀은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 차병원 신생아 낙상사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했다.

그 중심에는 신설 때부터 팀을 이끌어 온 강윤석 팀장(56)이 있다. 주로 강력범죄나 미제사건을 수사하던 '베테랑 형사' 강 팀장은 2015년부터 6년 동안 살인현장이 아닌 병원을 누비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강윤석 의료수사1팀장을 만나 조금은 낯선, '의료수사'에 대해 물었다.

◇'베테랑 강력형사'에서 자타공인 '의료수사 전문가'로

가수 신해철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서울경찰청에 국내 처음으로 의료수사팀이 생겼다. 당시에는 통상 의료 사망사건이라도 일선 경찰서의 형사 1명이 맡아 다른 여러 사건과 함께 처리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분야를 전문으로 수사하는 전담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강 팀장은 "그때 처음 의료수사팀이 생겨 신설 팀장을 맡았다"면서 "이 팀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며 웃었다.

그는 "처음 의료수사팀을 꾸리면서 막막했고 고민도 많이했다. 늘 입술이 부르틀 정도였고 공부도 많이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서울경찰청 의료수사팀이 여러 성과를 내자 다른 지역에도 하나둘씩 의료수사팀이 설치됐다. 지금은 대부분 지역에 전문팀이 꾸려졌다.

강 팀장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강력형사'이기도 하다. 경찰 경력 올해 33년차인 강 팀장은 주로 형사, 강력, 폭력계에서 근무해왔다.

서울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 창설 멤버로 활약하면서 무속인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노숙인을 살해해 화장한 사건,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친한 동생을 생매장해 살해한 사건 등 여러 가지 미제사건을 해결한 경험도 있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지난 9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집도의에게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강 팀장은 의료수사팀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권대희씨 사망사건'을 꼽았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2016년 당시 25세의 대학생 권씨가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은 뒤 과다출혈로 사망한 일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많이 받기 위해 같은 시간대에 수술방을 여러 개 열어 놓고 여러 방을 들락거렸다. 권씨에게 과다출혈이 있었지만 의사는 권씨를 방치한 채 수술방을 나갔고 간호조무사가 30분 동안 처치했다.

당시 집도한 성형외과 원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 내 유령수술을 방지하기 위한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권대희법'이 발의됐다.

◇"의료 사망사건 점점 늘어"…전담 경찰도 출범 이후 2배로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료진 과실을 입증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대부분 수술실에는 CCTV가 없고 의료사고 이후 의료기록이 조작됐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강 팀장은 의료 사망사건 입증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잘못을 감추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분명히 허점이 나타난다"며 "그래서 다 꼼꼼히 본다"고 답했다.

그는 "과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서버를 지운 경우도 있었는데, 병동의 CCTV와 다른 과의 의료기록을 대조해 혐의점을 확인했다"면서 "외국 학회에 의견을 구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팀장은 "의료사고는 주로 악의적 과실이나 만연한 부주의, 혹은 의료진 간의 소통 문제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약물의 찌꺼기를 모아 써서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악의적 과실에 해당할 수 있다.

2015년 10월25일 오후 경기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고(故) 신해철 사망 1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2015.10.25 스타뉴스/뉴스1

국내 의료서비스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의료수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는 올해 189조원(추정치) 수준으로 4년 새 37% 커졌으며, 세계 11위 규모다.

강 팀장은 "의료 사망사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수사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예전 같으면 해결 방법을 몰라서 포기했을 피해자 가족들이 신고하면서 사건화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의료 사망·뇌사 사건은 일선서가 아닌 각 지방청의 전담팀이 직접 수사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강 팀장은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뇌사 사건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데다 난이도 또한 높다"며 "전담팀에서 도맡는 게 일선 경찰서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수사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의료수사팀은 출범 이후 총 49건의 사건을 수사했는데 지난해에만 9건을 해결했다. 전담 경찰관의 수는 출범 당시 7명에서 올해 13명으로 2배로 늘었다. 1개였던 팀도 올해부터 2개팀으로 확대됐다.

강 팀장은 "의료사건 수사는 그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지만 유족들이 고맙다고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모든 의료 사건에 의사의 과실이 있거나 모든 의사가 범죄자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피해자에게 억울한 부분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돕고 해결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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