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광주는 윤석열을 믿지 않는다

이건상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2021. 11. 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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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1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대통령선거 후보는 ‘광주’의 강을 건너야 한다. 진보진영 후보라면 광주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보수 후보라면 결사적인 비토를 피해야 한다. 광주는 특정 도시를 뜻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의 상징체이다. 정치 공학으로 보면 수도권 표심과 중도로 확장해가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유력 대선후보는 그래서 ‘광주’를 피할 수도, 피하기도 어렵다. 적당히 우회할 수도 없다.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광주가 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치적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대체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할 때는 호감 그 자체였지만 검찰총장·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고 엇갈린다. 지난 4월 윤 전 총장의 호남 지지세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압도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16일 발표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호남에서 윤 전 총장은 26.7%, 이 전 지사 24.5%, 이 전 대표 11.5%를 보였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그가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면서 외곽에 머물던 때였다. 일부 호남 유권자의 비(非)민주당 정서를 가져갔다.

■광주 방문 후 국민의힘 입당

윤 후보의 호남 지지세는 여름 들어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정책 능력에 대한 의문에 갖가지 실언, 가족 리스크까지 표출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7월 15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의 호남지지율은 11.8%에 불과했다. 20여일 전인 6월 21일 여론조사에서 22.5%를 보였는데 반 토막 난 셈이다. 지난여름 윤 후보의 호남지지율은 10%대 초반으로, 봄철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기대에서 서서히 실망으로 이동했다.

호남 지지세가 급반전하자 윤 전 총장은 7월 17일 전격 광주를 방문했다. 특히 지난 3월 검찰총장 퇴임 이후 지속돼온 고공 지지세가 하향 추세로 돌아서는 위기 국면이었다. 그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저 스스로도 아직 한을 극복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박관현 열사, 홍남순 변호사, 김태홍 전 의원 비석을 어루만지며 “5·18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이라고 평했다. 대학생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은 윤 전 총장에 대해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광주 방문 직후 느닷없이 국민의힘에 입당(7월 30일)했다. ‘광주’와 개혁, 중도라는 옷이 스스로 어색했을까. 광주 자영업자 최금한씨(58)는 “광주에서 5·18 비석을 보듬고 울먹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전두환이 전신인 국민의힘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호남 지지는 입당 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유증이 반영된데다, 국민의힘에서 팽 당할 것이란 세평도 더해졌다. 한국갤럽이 10월 22일 발표한 호남지역 정당지지도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53%, 국민의힘 17%였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3.1%포인트).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이전보다 더 상승했다. 이 조사는 국민의힘에게 본선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과 함께 역선택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정당에게 호남 지지도 10%는 마의 벽이었다. 이 벽을 뚫은 유일한 후보가 지난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였다. 그는 광주 7.76%, 전남 10%, 전북 13.22% 등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해 당선됐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자료).

호남의 지지세는 홍준표 후보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홍 후보는 처가가 전북인데다 광주지검에서 모래시계 검사로 활약해 우호적인 연고를 갖고 있었다. 홍 후보에 대한 이런 분위기는 경선 맞상대인 윤 전 총장에게 위기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난 11월 1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방문을 항의하는 시민들이 충혼탑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전두환 발언이 불러온 분노

당원, 보수 표심을 향한 확실한 구애 메시지가 필요했던 걸까. 그는 10월 19일 부산 해운대구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면서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라고 말했다. 전두환 옹호 발언은 전국을 발칵 뒤집었다. 보수정당이지만, 대통령 후보에게 기대했던 국민적 커트라인이 무너져 내린 발언이었다. 상식적인 역사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인할 수 없는, 왜곡과 망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욱이 피해자인 호남인을 통해 가해자인 전두환을 칭송한 어법은 광주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최영태 전 전남대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히틀러가 바캉스 제도를 도입하고, 아우토반을 만들고, 산림녹화에 올림픽도 열었지만 그 누구도 히틀러가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전두환씨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도륙한 5·18 가해자이자 국가내란의 수괴라는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이다. 그에게 어떠한 공이 있더라도 국민을 학살한 죄를 덮을 수는 없다. 광주는 지금도 ‘전두환 단죄’를 위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문행주 전남도의원은 “전두환에 대한 옹호는 정권찬탈을 위해서는 선량한 국민을 학살해도 된다는 것이며,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5·18의 소중한 가치를 묵살한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날 이후 광주의 시선은 싸늘하다. 윤 전 총장을 지지했던 의사 등 전문가그룹과 일부 사회단체의 공개적인 지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윤 후보 측에서 국민통합과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옛 정치권 인사 영입에 나섰지만, 광주의 마음을 달래고 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과 김동철 전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미래 호남의 이익’을 거론하지만, 반향이 부실하다.

윤 후보가 두 번째로 광주를 찾은 지난 11월 9일, 반발과 분노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의 사과와 참배 자체를 영장이나 압수수색 같은 ‘참배 집행’으로 받아들였다. 수도권 호남 표심을 노린, 면피용 선거 술책이라는 격한 반응이 봇물을 이뤘다.

윤 후보가 보는 ‘광주’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다급하게 광주를 찾을 때는 정치적 위기이거나, 지지도가 빠지거나 설화(舌禍)로 자질을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광주에 오면 호남, 수도권 표심, 중도 외연 확장과 같은 온통 정치 공학적 단어들만 따라붙는다. 광주가 보는 윤석열은 미덥지 않다. 그는 진실로 전두환을 밟고 ‘광주’의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이건상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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