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할 때 심사받는 지휘 경연..한국서 처음 본 독특한 풍경

김호정 2021. 11.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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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1회 국제지휘콩쿠르 현장
상금 5000만원의 국제적 수준
42개국에서 지원자 166명 몰려
"음악성, 지식, 소통능력
모든 것이 지휘에 필요"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의 이달 12일 본선에서 지휘하고 있는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미국). [사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12일 오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300석 객석에 관객 30여명만 앉아 한적했다. 무대에는 지휘자 한 명이 걸어들어왔다. 그가 오케스트라 앞에 서는 순간, 무대 화면의 커다란 디지털 시계가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지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그가 바라보는 합창석엔 심사위원 7명이 악보를 앞에 놓고 앉아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적 지휘 콩쿠르의 풍경이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KSO)는 올해 1회 KSO국제지휘콩쿠르를 시작했다. 만 23~34세의 젊은 지휘자를 대상으로 국적 불문 1~3위를 선발해 상금과 함께 지휘 기회를 준다. 1위는 상금 5000만원으로 대형 국제 콩쿠르 수준(쇼팽 콩쿠르가 4만 유로, 약 5400만원)이고, 코리안심포니의 부지휘자가 되는 것은 물론 서울 예술의전당, 인천ㆍ통영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 광주ㆍ대전ㆍ부산ㆍ인천 시립교향악단도 우승자에게 연주 무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접수 기간이던 7월, 코로나 19가 무색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지원이 몰렸다. 42개국 166명의 지휘자였다. 콩쿠르 주최 측은 이 중 12명을 추려 이달 11~14일 세 차례 경연 무대를 열어 우승자를 가리기로 했다. 코리안심포니의 박선희 대표는 “한국 입국 시 2주 자가격리를 염두에 두고 지원해야 했는데도 많은 참가자가 몰려 놀랐다”고 전했다.

지휘 콩쿠르에 지휘자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있다. 지휘자들에겐 무엇보다 오케스트라가 귀하다. 각 악기 연주자들을 모아 지휘해보기 힘들기 때문에, 콩쿠르 참가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광주시향의 홍석원(39) 지휘자는 “젊은 지휘자에게 관현악단과 연습ㆍ연주하는 기회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지휘는 피아노ㆍ바이올린 등 악기보다 콩쿠르가 적다. 현재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WFIMC)’에 소속된 피아노 대회는 50개지만 지휘는 6개다.

지휘 콩쿠르가 드문 만큼 경연 현장도 독특했다. 참가자들은 오케스트라와 사전 연습 없이 바로 무대에 오른다. 무대 위가 첫 만남이고 연습 현장이다. 객석에 청중은 있지만, 공연에서처럼 한 곡을 쭉 연주할 필요도 없고, 부분과 부분을 끊어 점검해보며 자신의 음악적 견해를 전달해도 된다. 모든 방식은 참가자 선택이다.

12일 2차 본선에 올라온 지휘자 7명은 모두 태도가 달랐다. 과제곡은 한국 작곡가 김택수의 오케스트라 작품인 8분짜리 ‘더부산조’였는데, 프랑스의 니키타 소로킨(31)은 지휘대에 오르자마자 “183마디부터 해봅시다"라며 각 부분을 연습시켰다. 중국의 리한 수이(27)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연주해본 뒤에 “정말 훌륭한 연주”라며 칭찬을 이어갔고, 음의 색채를 강조해 각 악기에 정확한 주문을 보냈다. 영국의 토비 대처(32)는 악보에 적힌 모든 지시어를 해체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설명하며 “까다로워 미안하지만, 이 악보 자체가 그렇다”는 농담을 던졌다.

지휘 콩쿠르의 심사위원들. [사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사실, 이런 장면은 무대 위 오케스트라 연주 전의 ‘연습’ 과정이다. 지휘 콩쿠르의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연습을 공개하고, 연습을 시작하는 순간 평가를 받는다.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경연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여타 음악 대회와 다른 풍경이다.

그럼 심사위원들은 지휘자들의 무엇을 볼까. 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인 레이첼 보론은 본지와 서면 인터뷰에서“모든 것의 총합을 본다”며 “지휘 기술, 음악성, 모든 장르와 작품에 대한 지식,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능력을 판단한다”고 했다. 보론은 기념비적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65), 영국 스타 지휘자 다니엘 하딩(46)을 키워낸 에이전트다. 그는 독주자와 달리, 사람들을 이끄는 지휘자의 경우엔 많은 능력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휘자의 가장 큰 목표는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타고난 능력, 용기, 경험 같은 수많은 것들의 조합이 필요하다.” 코리안심포니의 박선희 대표는 “지휘자에게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사위원 구성도 다각도”라고 했다. 에이전트뿐 아니라 지휘자(정치용), 뉴욕필하모닉 악장(프랑크 후앙), WFIMC 사무총장(플로리안 리임), 지휘 교육자(피터 스타크) 등이다.

지휘 콩쿠르는 또한, 지휘자의 역할을 정확히 보여준다. 작곡가 김택수의 곡을 놓고 각 경연자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김택수는 “대부분 자기만의 해석을 준비해왔다”며 “한국 음악을 기본으로 한 내 곡을 위해 어떤 참가자는 진양조의 강세를 공부했고, 또 다른 이는 진양조의 호흡으로 곡을 해석했다”고 했다. “내 곡에 이렇게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 몰랐을 정도다.”

오케스트라 지휘의 역할과 의미를 알려준 한국 첫 국제 콩쿠르는 14일 막을 내린다. 결선에 진출한 한국의 윤한결(27), 미국의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26), 중국의 리한 수이가 오후 5시부터 차례로 한 시간씩 공연을 열고 우승자를 가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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