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유럽군 창설'..EU는 왜 새로운 군대를 만드나?

금철영 2021. 11.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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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역사적인 유럽통합군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전통적인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군대'는 분명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토(NATO)와 같은 성격도 아닙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는 태생 자체가 냉전 시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런만큼 유럽군은 NATO 같은 집단방위기구 성격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유럽군'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EU 각 나라의 군대도 다 따로 있고, 그렇다고 미국 주도의 NATO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유럽통합군 창설' 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요. 왜 갑자기 새로운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유럽연합 EU 회원국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은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유럽군이 창설되면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논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일단 오는 2025년까지 병력 5천 명 규모의 합동군을 창설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육군과 해군, 공군을 모두 포함한 '신속 대응군'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로이터 통신 등이 발 빠르게 관련 '보안문서'를 입수해 취재한 덕분에 유럽군이 창설되면 무엇을 할지, 개략적인 윤곽도 알려졌는데요. 그 골자를 보면 "적대적인 환경에서 구조 및 대피, 안정화 작전과 같은 모든 범위의 군사적 위기관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합동 군사훈련'도 하기 때문에 잘 운용만 된다면 비교적 이른 시일 내 유럽군만의 새로운 전술 작전 교리도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 각국의 군대들이 유럽이라는 '작전 반경' 내에서 미군 없이 통합작전을 해 본 적이 없었죠. 그런 만큼 이제 유럽연합으로서는 그야말로 행정기구와 의회라는 정치 분야 통합, 유로화를 통한 경제 분야 통합에 이어 이제는 '유럽군'이란 군사 분야의 통합에까지 성큼 다가서게 된 것입니다.

명실상부한 정치 경제 군사 분야의 통합체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유럽 연합 회원국 27개 나라. 창설당시 6개 나라에서 2013년 크로아티아가 가입하면서 28개 나라로 가입국이 늘었으나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되면서 유럽연합 EU 화원국은 기존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어들었다. (그래픽 출처 https://op.europa.eu/)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이 전 세계 각 나라에 설치한 유럽연합 대표부에 직업외교관 뿐 아니라 '유럽군' 소속의 무관을 파견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봐야할 겁니다.

이처럼 '소리 없이 역동적인' 유럽군의 태동 움직임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쳤던 트럼프 미국 행정부 시절 급물살을 탔습니다.

트럼프와 달리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유럽군 창설이 NATO의 위축과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었던 만큼, '유럽군 창설' 논의는 그야말로 지지부진했었고 개념적 논의 차원에 머물렀었죠.

하지만 트럼프 시대들어 유럽 각국에 NATO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며 거세게 압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말기인 지난해 7월 말, 독일 주둔 미군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독일 주둔 미군 유럽군 사령부의 벨기에 이동은 물론, 여기서 빼낸 만 2천 명의 병력을 주요 작전지역에 재배치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순환배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당시 에스퍼 국장장관까지 나서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맹의 역사가 새로운 변곡점'에 있다고도 했었죠.

2020년 7월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미군 유럽군 사령부와 특수전 사령부를 벨기에 몽스로 이전하고 독일 주둔 미군도 만2천명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실제로 이 발표 뒤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이 일부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연이은 미국 대선과 '동맹강화'를 표방한 바이든 후보의 당선으로 이 방침은 사실상 유야 무야 됐습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은 단순히 이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연합방위체제인 NATO 시스템에서 주도국인 미국이 동맹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단지 '방위비 분담금 갈등'과 같은 사유로 병력을 크게 감축하고 사령부까지 옮긴다면 유럽의 전략적 예측 가능성이 줄어들고 핵심 이익 역시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다른 나라 방위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미국의 필요성, 그리고 미군 역할 감소에 따른 그 공백을 우려하는 유럽연합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 유럽군 창설은 급물살을 탄 것입니다. '동맹강화'를 외치며 집권한 미국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군이 '더 이상 주둔의 실익이 없다' 면서 서둘러 아프간 철수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유럽군 창설 논의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미군은 주요 작전 지역에 미군을 신속하게 투입하기 위해서, 전 세계 주둔중인 미군을 빠르고 유연하게 상황에 따라 재배치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유럽군 창설이 불필요하게 NATO의 힘을 소진시키지 않고 지역 내 분쟁과 난민유입 등 유럽지역만의 현안을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하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 역시 1992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기억이 있어서일까요? 당시 당시 '유럽의 화약고' 인 발칸반도에 대참사가 벌어졌었죠. 민족별 종교별 갈등으로 연방국가인 유고연방이 붕괴된 이후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 범죄까지 자행되는 참극도 계속됐죠. 결국 구 유고연방은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 나라에 코소보 차치령 등 여러 나라와 정치권역으로 분열됐습니다.

전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미군은 NATO의 일원으로 깊숙이 개입했고, '데이턴 평화협정' 등 힘겨운 정치적 타결까지 이끌어 내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습니다.

이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 EU의 회원국이 됐습니다. 지금도 발칸반도의 나라들은 과거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언제 또다시 갈등이 비화될 지 모르는 것이죠.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은 영국이 탈퇴하면서 27개 나라가 회원국의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유럽 방위기구인 NATO의 회원국은 30개 나라입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라고 다 NATO 회원국이 아닙니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NATO 회원국들도 모두 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아니죠.

유럽연합의 핵심 회원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이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하면서 군사분야에서 유럽연합과 NATO의 이해관계는 조금 더 멀어지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 (NATO)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회원국 30개국의 명단 . 괄호안은 회원국들이 나토에 가입한 연도. 2009년에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2017년에는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가 가입하면서 나토 회원국은 현재 30개 나라로 확대된 상태다. (출저 NATO 홈페이지)


그러면 만약 발칸반도 등 앞으로 유럽연합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누가 개입하게 될까요? 각국의 경찰과 군 병력으로 대처하기 힘든 지역 분쟁이나 난민사태가 발생하면 어디서 개입해야 할까요? NATO 회원국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이라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TO 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큽니다.

NATO 조약 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침략은 NATO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원포 올, 올 포 원 (One for All, All For One) 조항입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요충이자 천혜의 자연조건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이후 지속적으로 NATO의 가입을 희망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2014년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병합하였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지가 있다. 아래 사진은 2016년 러시아가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세바스토폴을 공개했을 당시로 주요 군함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둘러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NATO국가들의 러시아 견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유럽 내에서 러시아의 '현상 변경'시도가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를 일이지만, 미국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 군사력 투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팽팽한 힘의 균형'이 이어지거나 '압도적인 중심세력'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분쟁의 가능성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겠지만, 힘의 균형추가 기울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지역 내 난민 문제와 재난 상황의 크기에 따라 그 파급효과는 예측하기 힘들 수도 있고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서 미국 호주와 함께 새로운 동맹체 '오커스(AUKUS)'에 참여한 것도 유럽국가들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키웠을 법한 일입니다.

결국 유럽군의 창설은 '불안한 유럽의 미래'에 대한 유럽 지도자들의 고뇌와 결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제 더이상 유럽의 분쟁해결과 위기관리를 미국 주도의 연합방위체제에만 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 왔다는 현실 인식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죠

2차대전의 참화를 겪은 유럽 각 국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대파괴의 전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연합체'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의지와 결단으로는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던 나라들끼리 뭉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철도와 도로 같은 인프라를 공유하고 석탄 철강 공동체를 통해 자원을 공유하면서 '상호의존의 고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쟝 모네와 같은 인물들이 앞장서 유럽의 지도자들을 설득했고, 여기에 나치와 싸웠던 프랑스 레지스탕스 지도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유럽공동체의 거대한 실험은 시작되었던 것이죠. 물론 유럽 지역이 갖는 독특한 지정학적 요인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뒤따랐고요.

이제 정치와 외교, 경제 분야 통합에 이어 이제는 유럽군 창설에 따른 군사 통합까지, 유럽연합 EU는 거대한 통합의 역사에 한발을 더 내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론 갈등의 요소 또한 더 커졌다고 볼 수 있겠죠. 짊어져야할 짐의 무게도 한층 늘어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유럽군의 창설이 결코 때 이른 것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미·중 간의 패권경쟁까지 치열해지는 와중에 넋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요.

금철영 기자 (cyk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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