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원 유혹해 합의금 수천 물린다..알바 청년 나락 빠뜨린 수법

강주안 2021. 11. 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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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사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중국ㆍ필리핀 등지를 근거지로 삼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날로 기승을 부리면서 시민들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연간 3만건에 이르고 지난해 피해 금액이 7000억원에 달했다.


SNS 대화로 드러난 보이스피싱범 알바 기만 수법


그런데 이 범죄 조직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속이는 것보다 더 교활하게 아르바이트(알바)를 구하려는 대학생과 생활비 벌이에 나선 주부 등을 속여 범죄에 이용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청년과 주부들은 사기 전과자로 전락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범죄 조직에 뜯긴 거액을 합의금으로 물어내야 할 위기에 몰린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SNS 대화를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대학생과 취업 지망생들을 얼마나 교묘하게 속이는지 밝혀졌다. 이들은 알바몬이나 알바천국 같은 유명 사이트를 통해 알바 지망생들에게 검은손을 뻗쳤다.
쇼핑몰 알바라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20대 여성 A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구매자들에게 돈을 받아 전달하는 업무라는 말에 속아 자신의 통장으로 입, 출금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 검찰은 A씨가 범죄인 줄 알면서 가담했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A씨는 다음 달로 예정된 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일당이 A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에는 A씨가 속아 넘어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음은 대화의 일부.


20대 전과자 전락…일당 7만원에 수천만 원 물어내


보이스피싱범이 알바 지망생 A씨를 속이는 카톡 내용 일부 재구성.
(A씨)안녕하세요. 알바몬에서 지원한 ㅇㅇㅇ입니다. 문자 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A : (보이스피싱범)아 네네 안녕하세요^^ 전염병 조심하시구요 :) A : 저희 업체에서 구인 공고를 내는 부분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저희 국내쪽직구플랫폼쪽에 플랫폼이 많아 관리가 번거로워 한개의 플랫폼을 관리해주실 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A : 업무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입니다. 급여 7만원 당일 정산되어 지급됩니다. 수습 끝나시면 급여 부분 인상조정 들어가십니다. (명함 발송)
A : 저희업체에서 판매(옥션, 11번가 등등)를 통해 진행하게 되는데요. 판매가 완료된 대금부분을알바님을 저희 업체 플랫폼에 셀러로 등록처리를(계좌를 플랫폼에 연동)하여 판매대금을 관리해주시는 총무 업무를 담당하십니다. A : 플랫폼에서 대금이 ㅇㅇ씨쪽으로 처리되면 저희가 안내해드리는 곳으로 대금을 처리를 해주시면 됩니다.

Q : 네 진행하고 싶습니다^^
(전화번호, 은행 계좌, 주민등록증 발송)

Q : 혹시 이 아르바이트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요?
A : 수습 이후에 원하시면 정직원 채용되세요!

Q : 아 네 회사 이름만 좀 알 수 있을까요?^^
A : (사업자등록증 발송) 사업자 넣어드려요!

Q : 아 감사합니다!
A : 아마 재직증명서 들고 은행에 내방해주셔야 할 거 같네요.ㅎㅎ. (재직증명서 발송)

보이스피싱범이 알바생 A씨를 속인 재직증명서. 은행에서도 통했다.

A씨는 “우울증을 겪다 보니,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일하는 게 특히나 어려웠다”며 “이를 이겨내 보려고 카페ㆍ쇼핑몰ㆍ놀이공원 아르바이트 등에 도전해봤지만 일이 느리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했다”고 말했다. A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쇼핑몰 대금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과장님이라는 분이 너무 친절했고 작은 일을 해도 칭찬받았을 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하며 뿌듯하고 감사했다”며 “재택근무로 하면서도 4대 보험이나 정직원 전환도 가능하다고 해 부모님께 늘 걱정거리였던 제가 직장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뻤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일당이 은행에 내라며 보내준)재직 증명서를 받았을 때 바로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자랑했던 저의 모습이 슬프지만, 떠오른다”고 말했다. 일당 7만원씩 70만원 정도를 받은 그는 지금까지 피해자들에게 물어준 합의금만 17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A씨에게 보내준 재직증명서는 은행에서도 통했다. A씨를 속인 범죄 조직에 은행도 넘어간 셈이다. 사회 경험이 적은 알바 지망 청년들이 줄줄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다. 요즘 보이스피싱 조직은 금융기관 서류 양식에 도장 파일을 옮겨다 붙여 정교하게 위조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사업자등록증 등을 전송받고 택배 회사인 줄 알고 일하다 검거된 B씨는 코로나19로 당분간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며 조금 있으면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는 말에 속았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결혼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고 B씨에게 신혼 생활 얘기까지 하며 속였다. 다음은 보이스피싱범이 B씨와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의 일부다.

보이스피싱범이 택배 업무를 찾는 구직자를 속이는 대화 내용 재구성.

Q : (B씨)혹시 제일 많이 배송하면 한탕에 보통 몇 박스까지 해요?
A : (보이스피싱범)저희는 몇 박스씩 하는 게 아니고 한탕당 무조건 한 박스씩 일합니다. 생필품 위주여서 가끔 서류 같은 거도 배달하고 그래서

Q : 네~ 알겠어요
A : 네네 박스 크기는 1~2kg짜리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여성분들도 일 잘하거든요.

Q : 네. 아주 좋네요. (프로필 사진이 결혼사진임을 보고) 곧 결혼하시나요.
A : 저번 달에. 신혼입니다 ㅋㅋ

Q : 아...축하해요. 좋겠군요 ㅎㅎㅎ

Q : 모든 게 비대면으로 진행돼요?
A : 사무실 인테리어 마무리되면 사무실에서 근무할 거예요. 코로나땜에 지금 차질이 많이 생겨서

Q : 아...사무실근무라는 게...09시 사무실로 출근 후 대기하다가 일 시작한다는 건가요?
A : 사무실 입장에서도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네 그쵸.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오더 내려오면 근무하는 형식으로

Q : 사무실이 어딘데요?
A : 사무실은 분당이구요 경기 전지역으로 낼 거라서 본인 지역 사무실로 출근하면 돼요 A : 저는 와이프랑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어요. 성인 되니까 와이프가 어느 순간 여자로 보이더라구요.

Q : ㅋㅋㅋㅋ 헐
A : 그러다가 사랑에 빠졌죠 ㅋㅋ; 친구들은 드라마 찍냐고 하는데 실화예요 A : 좀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 제가 져주는 게 아니라 제가 그냥 집니다. 장모님께선 항상 하늘 같은 남편한테 잘해야 된다하시지만, 와이프는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러냐고.... 이런 상황이지만 수사 당국은 A씨나 B씨를 비롯한 알바 지망생들이 범죄인 줄 몰랐을 리 없다고 말한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유행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보이스피싱인 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런 논리라면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돈을 보내는 피해자도 이젠 안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알바 청년들이 범죄인 줄 알고도 가담한 것이라면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뭐하러 각종 서류까지 위조하면서 알바 청년들을 속이겠느냐"라고 반박한다.
전민성 변호사는 “형사상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인 줄 모르고 단순히 알바로 생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며 “과실범에 가까운데 확정적 고의를 가진 것처럼 처벌한다"고 지적한다.
이병찬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걸려들면 알바생들은 기본이 실형 2~3년을 살아야 한다”며 “이들이 거액을 내고 피해자들과 합의해야 집행유예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 전직 경찰 간부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에 현금을 운반한 알바생들을 선처하지 못한다”며 “주범들은 잡을 수가 없으니 이들이라도 엄벌하면서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걸려든 알바 학생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그래도 수사기관에 선처를 기대하긴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직원 “주범들 중국 공안에 잡혔다가도 풀려나”


주범들이 활동하는 중국에선 정작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전부 체포하고도 풀어줬다는 증언까지 나온다.

지난달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 C씨는 지난해 10월 부산경찰청 조사에서 2017년 칭다오에서 일당이 전부 중국 공안에 체포됐던 사실을 털어놨다. C씨에 따르면 범행 장소인 아파트에 한국인이 드나드는 걸 수상하게 여긴 경비원이 공안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출동한 공안은 조직원들이 DB를 보면서 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해 공안 20여명이 들이닥쳤다. 조직원들을 대형 승합차에 태워 파출소로 끌고 갔다. 그런데 공안에 인맥이 있는 조직 핵심인물 전모씨가 간부에게 연락해 그날로 석방됐다는 것이다.
같은 조직에서 일했던 D씨도 “공안에 2차례 잡혀갔지만, 전 씨가 힘을 써 풀려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로 20대 취업준비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다. 중국 공안이 보이스피싱 일당을 처벌하거나 한국에 인도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범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알바라는 말에 속은 청년과 주부들만 철퇴를 맞는 현실이다.
“이렇게 고액을 주는 알바인데 범죄인 줄 몰랐을 리 없다”는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도 생긴다. 지난달 대구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대학생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 학생이 범죄인 줄 알았다며 재판에 넘겼다. 당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국민참여재판으로 1심이 진행됐다. “범죄인 줄 알았다”며 유죄를 강력히 주장한 검찰 의견과 달리 국민배심원들은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도 배심원들의 뜻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대학생이 범죄인 줄 알았다며 즉각 항소했지만, 대구고법도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심각한 만큼 엄정한 판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현금수거책은 속은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해 범행을 최종 완성시키는 역할로 엄단이 필요하다”며 “이들 중 조직원과 적극 공모하고도 ‘몰랐다’며 처벌을 피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구직자 등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현혹되는 등 우연히 범행에 가담하게 되는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관련 예방책 또한 검토ㆍ추진하고 있다”며 “개별 사안마다 엄격한 증거 판단을 통하여 억울한 피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회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만약 약하게 처벌하면 어떤 쪽으로 발전해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해 공익적 차원에서 변론 활동을 벌여온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은 사람들이 너무 과한 처벌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국선변호인은 “본범을 잡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종범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일괄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기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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