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김만배씨를 화천대유 대주주라고만 쓸까?

김달아 2021. 11.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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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문과생이었던 나는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을 봤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선 3개는 공통과목으로 정해두고 남은 하나는 한국사와 윤리 중에 선택하게 했는데, 윤리를 선호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문과생 200여 명 중에서 윤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이었다.

내가 윤리 시험을 보지 않은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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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터러시] 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11월3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 ⓒ시사IN 신선영

고등학교에서 문과생이었던 나는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을 봤다. 요즘은 한국사가 필수과목이지만 당시엔 사회탐구영역 11개 과목에서 4개를 택해 시험을 쳐야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선 3개는 공통과목으로 정해두고 남은 하나는 한국사와 윤리 중에 선택하게 했는데, 윤리를 선호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문과생 200여 명 중에서 윤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스무 명 남짓이었다. 내가 윤리 시험을 보지 않은 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윤리 교과서를 아무리 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특히나 실생활의 도덕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묻는 윤리학 개념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남의 일 같던 ‘윤리’가 내 일이 된 건 기자가 되고 나서였다. 윤리는 기자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어떤 아이템을 발제하느냐부터 취재원을 어떻게 대할지, 어떤 방법으로 취재하고 보도할지, 기자 생활 내내 윤리적 고민이 따라다닌다. 기자들의 윤리 교과서는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이다. 기자협회는 1994년 윤리강령 제정 당시 ‘공정보도를 실천해야 할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보다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면서 언론 자유, 정당한 정보수집, 사생활·취재원 보호 등 10가지 행동기준을 제시했다. 올해 1월에는 ‘언론윤리헌장’을 새로 만들어 선포했다. 윤리헌장은 ‘언론의 자유’를 앞세우기보다 기자와 언론이 ‘윤리적’이어야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9대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이 기준과 원칙이 무색해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신라젠 사건을 취재하던 채널A 기자의 취재 윤리 문제와 취재 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한 MBC 기자 사례는 언론계 안팎에서 큰 논란거리였다. 윤리 위반을 넘어 범법행위를 한 기자들도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TV조선 기자 등 4명은 ‘가짜 수산업자’로 불린 인물에게 금품을 받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다. ‘화천대유자산관리’라는 회사의 대주주인 김만배씨는 기자였다. 〈머니투데이〉에서 기자로 근무하던 2015년 화천대유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는 대장동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난 9월에야 〈머니투데이〉에 사표를 냈다. 이름에 전직 직책을 붙이는 보도 관행대로라면, 기사에서 그는 화천대유 대주주일 뿐 아니라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으로 쓰여야 한다.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이라고 써야

법조기자 생활을 오래 한 김 전 부국장은 유명 법조인들을 화천대유의 고문·자문위원으로 위촉한 배경에 대해 “좋아하는 형님들”이라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법조기자가 아니었다면 그 좋은 ‘형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지난 6월 수원 개발 예정 농지 600평을 사들이면서 제출한 영농 계획서엔 자신을 ‘20년 영농 경력자’라고 기재했다(〈노컷뉴스〉 보도). 〈머니투데이〉에 재직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김 전 부국장이 어떤 기자로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지금 나온 말과 행동에선 기자로서의 윤리 의식을 찾기 어렵다. 기자들이 선언한 윤리적 원칙과 앞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 윤리 문제를 고민하는 수많은 기자의 노력이 몇 사람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될까 두렵다.

김달아 (<기자협회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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