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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시키고 혼 좀 냈다고 나가버려? 90년대 직장인 잡는 법

이소아 입력 2021. 11. 21. 08:00 수정 2021. 11. 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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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 마케팅 업체는 올 들어 직원들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수개월째 필요한 인력의 20% 정도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퇴사자는 모두 20~30대 초반의 젊은 직원들이다.

이곳 김 모 대표는 “퇴사 이유를 물어보면 업무 지적을 받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저녁 7시 이후 근무가 잦아 부담스럽다, 복사나 스캔을 하는 일이 많아 만족스럽지 않다 등의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는 “퇴사는 개인의 자유지만 직장에서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나, 아쉬운 생각이 든다”며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장통교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이 모여있는 관철동 젊음의 거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99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직장인들의 인식이 기존 조직 문화와 부딪히며 취업난 속 구인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준비자는 83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은 대부분(87.6%) 2030세대로, 취업준비자의 증가는 실업자 증가로 볼 수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오히려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업의 인력 부족률은 2.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4%포인트 증가했다.


청년 실업자 많은데 ‘금방 퇴사’


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선호가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직장 내 세대 차이가 의사소통·대인관계·업무방식 등에 부정적으로 작용해 젊은 직원들의 잦은 퇴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90년대생 직원들과 일한 적이 있는 직장인 5000명에게 물어보니 이들과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이직을 쉽게 생각, 금방 퇴사한다’(26.6%)였다. 이어 ‘힘든 업무는 쉽게 포기’ ‘오로지 내 업무만 관심’ ‘권리만 찾고 의무는 모르쇠’ 등의 의견이 나왔다.
90년대생 직원과 일하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면 ‘트렌드에 민감하고 아이디어가 많다(33.4%)’를 비롯해 ‘빠른 업무습득 속도’ ‘강한 혁신성, 변화에 빠른 적응’ 등은 장점으로 꼽혔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진석(39·가명) 차장은 “나도 밀레니얼 세대고 강압적인 지시나 회식은 싫어한다”면서도 “요즘 후배들은 ‘시키는 것만 하겠다’는 자세가 강하고 조금만 지적해도 토라지거나 인사팀에 건의하기 때문에 연대의식을 갖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일하는 ‘의미’ 못 찾으면 바로 떠난다


90년대생들도 할 말이 있다. 지난 9월 정보기술 관련 업체를 퇴사한 이모(30)씨는 “회사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나에게 주는 비전도 중요한데 거기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야근을 많이 했는데 이렇다 할 보상도 없고 팀장이 투명하게 모든 걸 설명해 준다는 느낌도 없었다”며 “건강만 나빠지고 도움되는 건 없는 것 같아 일단 나오게 됐다”고 했다.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Z세대는 맞춤형 사교육 등 정제된 교육을 받고 자랐고 경제적 윤택함 속에 가정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자랐다”며 “연봉도 중요하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명확한 업무지시, 일에 대한 가치 설명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직급 없애고 메타버스로 채용·교육


잡코리아가 90년대생 직장인 1002명을 대상으로 좋은 직장의 조건(복수응답)을 물은 조사에서도 ‘워라밸 보장’(49.9%)이 ‘급여·성과급 등 금전적 보상’(48.9%)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어 ‘우수한 복지제도’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사내문화’를 좋은 직장의 조건으로 꼽았다.
국내 중견 제조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70년대 이전 세대는 이직을 배신이라 여겼고 80년대생도 최소 2~3년 이상 경력을 쌓는 게 룰이었다면, 90년대생은 입사 순간부터 이직을 생각한다”며 “이들을 어떻게 잡을지가 기업들의 최대 숙제”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7일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에서 하반기 채용 설명회를 열었다. 사진 롯데백화점
기업들은 이미 달라진 2030직원의 특성을 내부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심화할 수 있는 직급체계를 폐지하고, 상급자의 일방적인 평가를 보완하는 취지에서 동료 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그룹엔 2030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사무연구직노조가 생겼고, 카카오엔 ‘길’이란 전담팀(TF)이 다양한 직원 복지제도를 발굴하고 있다. SK·LG·롯데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금융권 등 수많은 기업이 비대면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맞춰 채용설명회나 신입사원 교육에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우수 인재 어떻게 잡을까


지난 5월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이 청년들의 일자리 관련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90년대생 직원들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 ‘가시적인 보상’과 ‘가치부여’ ‘자부심 고취’를 꼽는다. 단순히 ‘이거 하라’는 지시가 아니라 이 업무의 목적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가치’를 납득시킨 뒤 보상을 해야 기꺼이 따라오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90년대생 직원의 업무 몰입도 높이는 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구체적으론 ▶일을 할 때 왜 하는지 설명하기 ▶일을 하는 의미를 자주 강조해주기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기 ▶참여를 통해 인정욕구 채워주기 ▶발언권 부여하기 ▶무조건 버티라고 하는 대신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 기한 알려주기 등을 제시했다.

청년고용 전문가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우수한 젊은 인재를 유지하려면 업무가 소모적이거나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평생직장을 전제로 한 연공형 인사제도 대신, 성과를 내면 칭찬이든 인센티브든 실시간으로 보상하는 등 인사관리 시스템과 경력개발 프로그램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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