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호수 폐어는 항균 보호막 쓰고 수년 버틴다

조홍섭 2021. 11. 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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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가 닥쳐 작은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고 먹이가 부족해지자 아프리카 폐어는 긴 여름잠에 들 준비에 들어간다.

웅덩이 바닥의 펄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가끔 물 밖에 머리를 내밀고 폐로 호흡한다.

물이 졸아들면 구멍 속에 몸을 접어 넣고 점액을 분비해 막을 만든 뒤 딱딱하게 굳은 보호막 속에서 다음 우기가 올 때까지 몇 달 또는 몇 년까지 신진대사를 평소의 60분의 1로 줄이고 휴면에 들어간다.

물이 말라 먹이 찾기가 힘들어지면 폐어에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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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단순 건조 방지막 아닌 항균 백혈구 가득 찬 살아있는 조직 밝혀져
서아프리카 폐어 그림. 허파 호흡이 가능하고 뼈와 살집이 있는 지느러미를 지닌 오랜 계통의 물고기이다. 건기에 물이 마르면 다음 비가 올 때까지 휴면에 들어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건기가 닥쳐 작은 웅덩이의 물이 줄어들고 먹이가 부족해지자 아프리카 폐어는 긴 여름잠에 들 준비에 들어간다. 웅덩이 바닥의 펄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가끔 물 밖에 머리를 내밀고 폐로 호흡한다.

물이 졸아들면 구멍 속에 몸을 접어 넣고 점액을 분비해 막을 만든 뒤 딱딱하게 굳은 보호막 속에서 다음 우기가 올 때까지 몇 달 또는 몇 년까지 신진대사를 평소의 60분의 1로 줄이고 휴면에 들어간다. 중생대 초 지구에 출현한 폐어는 잘 발달한 폐를 지닌 고대 물고기로 실러캔스보다 사람 등 네발로 걷는 척추동물에 가까운 살아있는 화석이다.

웅덩이의 물이 차츰 줄자 폐어가 구덩이를 파고 휴면을 준비하는 과정. 에스티 마이네 반 노르드윅 제공.

점액이 굳은 폐어의 보호막은 이제까지 수분 손실을 막는 구실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해부학적 연구 결과 폐어의 보호막은 점액이 말라붙어 죽은 조직이 아니라 세포구조를 잘 갖춘 살아있는 항균조직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린 살리나스 미국 뉴멕시코대 교수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서 “폐어가 장기간의 휴면 동안 세균의 감염을 막기 위해 독특한 면역학적 적응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폐어의 몸속에 왜 다량의 과립구(사람의 호중구와 비슷한 과립성 백혈구)가 분포하는지 1930년대 제기된 의문을 푼 것이다.

살리나스 교수는 “활동 중인 아프리카 폐어와 2주째 휴면 중인 폐어를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보호막이 사실은 살아있는 세포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실험 결과 휴면에 들어간 폐어는 피부에 많은 수의 줄기세포가 생겨 여기서 만든 피부를 한 켜씩 떨궈 보호막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폐어의 살아있는 항균 보호막 형성 과정. 활동 중인 폐어(A). 휴면기에 접어들면 몸속에서 점점 더 많은 과립구가 진피와 상피층을 침투해 피부 조직이 느슨해지고 염증이 일어난다(B). 염증이 일어난 상피층이 떨어져 나가 보호막을 형성하기 시작한다(C). 보호막에는 다량의 과립구가 들어있는데 이들은 세균 증가에 대응해 ‘세포 밖 덫’을 만든다. 보호막에 항균 펩타이드(AMP)가 형성된다. 줄기세포가 상피조직을 재생하기 시작한다. 염증 상태는 유지된다. 휴면이 본격화하면서 여러 층의 피부가 분리돼 보호막을 형성한다(D). 라이언 다비 헤임로스 외 (2021)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연구자들은 “과립구가 병원체에 맞서는 최전방의 방어선”이라고 밝혔다. 조직 속에 저장돼 있던 과립구는 혈관을 타고 휴면에 접어든 폐어의 피부로 쏟아져 들어간다. 사람이 위나 피부에 염증이 생겼을 때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전형적인 염증 반응이다. 물이 말라 먹이 찾기가 힘들어지면 폐어에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

피부를 떠난 과립구는 보호막의 일부가 된다. 보호막은 이제 단순히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는 점막 층일 뿐 아니라 면역 방패가 돼 과립구가 병원체를 가둬 죽인다.

아프리카의 대리석 무늬 폐어. 세계 6종의 폐어 가운데 가장 커 2m까지 자란다. 조지 베르닝거 주니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살리나스 교수는 “보호막 속에서 과립구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보호막이 면역 기능을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립구가 세균 덫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자 폐어는 세균에 감염돼 패혈증과 출혈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결과는 폐어 생태의 이해뿐 아니라 사람의 염증 치료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살리나스 교수는 “폐어는 휴면 기간 스스로 피부에 상처를 내어 염증을 일으키고 우기가 돌아왔을 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피부 조직을 재생해 헤엄쳐 나간다”고 말했다.

휴면 중인 아프리카 폐어. 라이언 다비 헤임로스 제공.

폐어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모두 6종이 분포하며 물고기, 곤충, 갑각류, 양서류, 식물체 등을 먹고산다. 아프리카 폐어는 최대 2m까지 자라기도 한다. 매우 오래 살아 미국 시카고의 수족관에서 기르던 퀸즐랜드 폐어는 2017년 84살에 노화로 안락사 됐다.

폐어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부터 화석기록이 나오는 오랜 계통으로 바다를 떠나 처음으로 땅에 네발을 딛고 공기 호흡을 한 육상동물의 하나이다. 사지보행 동물의 직접 조상은 아니지만 실러캔스보다는 폐어의 조상이 사람과 같은 척추동물에 가깝다.

폐어의 계통도. 일반 물고기나 실러캔스보다 네발 보행 동물에 가깝다. 휴고 두텔, 브리스톨대 제공.

인용 논문: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j082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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