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상 최대 전략비축유 방출"..치솟는 기름값, 하락한 민심 잡기

박현영 2021. 11. 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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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한국, 일본, 인도, 영국 동참"
"국제 조율, 가격 인하에 도움될 것"
연말 고유가에 여론 나빠지자 처방
"비축유 쓸 긴급사태냐" 문제 제기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백악관 연설을 통해 사상 최대 전략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고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한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취지로 한국, 일본, 인도, 영국 등도 각자 보유 중인 비축유를 일부 풀기로 했다고 전했다. 중국도 동참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국제 공조를 주도해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1년 만에 최고 물가상승률이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리자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 최대 명절을 앞두고 인플레이션 억제 긴급 처방을 내린 것이란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팬더믹에서 회복하면서 필요한 공급을 제공하기 위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연방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에너지부가 미국인들을 위해 휘발유와 유가를 낮추려고 전략비축유에서 5000만 배럴의 석유를 내보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다른 나라들을 규합해 해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한국, 일본 등의 동참을 알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 일본, 한국, 영국은 각자 비축분에서 추가로 석유를 방출하는 데 동의했고, 중국도 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조율된 행동은 우리가 공급 부족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는 결국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에너지 가격 안정이 필요한 데다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는 지점이어서 미·중 협력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불만을 다독이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연설에서 "휘발윳값이 치솟는 상황은 언제나 고통스럽다"면서 "오늘날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0달러이고, 캘리포니아는 더 높다. 그 충격은 진짜"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격 급등 원인으로 증산에 나서지 않는 산유국과 가격을 내리지 않는 정유회사를 지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이 높은 이유 중 큰 부분은 석유 생산국과 대형 기업이 수요를 맞출 정도로 공급을 신속하게 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유가가 조금 내렸지만,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건 정유회사가 과도한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이라며 연방거래위원회(FTC)에 기업의 불법 행위 조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몇 주 동안 휘발유 도매가격은 10%가량 떨어졌는데, 주유소 가격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서 "휘발유 공급회사들이 적게 내고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겨냥했다. 평소 도소매 가격 차이를 고려하면 미국인들은 지금보다 갤런당 25센트는 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배경에는 유가 고공행진이 미국인들이 느끼는 인플레이션을 압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자리한다. 미국인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인 휘발유 가격은 1년 전보다 49.6% 올랐다. 이는 경제 회복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이번 전략비축유 방출 결정은 가족 모임을 위해 대이동하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성난 민심을 다잡기 위한 '긴급 처방' 성격이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인들을 위해 유가 상승을 억제하려고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12월 중순께 비축유가 시장에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방역 조치 해제 후 수요가 늘고 공급이 따르지 못하면서 유가가 뛰자 석유수출국개발기구(OPEC) 등에 생산량 증대를 요청했으나 관철하지 못하자 유가 인하를 위한 정책 수단 중 하나인 전략비축유 방출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이 전략비축유를 꺼내 쓸 만한 국가적 위기냐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이날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에서 기자들은 '불가피한 생산 차질이 아니라 가격 조정을 위해 전략 비축유를 사용하는 게 맞느냐' '지금이 긴급 사태냐'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결정이냐' '사상 최대 방출량 5000만 배럴은 어떻게 나온 숫자냐' 등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인 7억27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에서 90일간 소비할 수 있는 규모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공동 비축유 방출에 나선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세 번은 주요 산유국에서 벌어진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원유 생산에 대규모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지난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걸프전 당시 미국 등은 비축유 1730만 배럴을 풀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는 6000만 배럴을 방출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으로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을 때는 6000만 배럴을 시장에 내보냈다. 세 차례 모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한 것이 이번과 다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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