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귀환'..전두환 시절 대사들의 '외신 독후감'
"김(김대중)을 민주주의 신봉자로 부각하고 한국에 탄압과 정치폭력이 있는 인상을 부각하는 논조. PATT DERIAN(패트리샤 데리언 전 미 국무성 인권담당차관보) 등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수행자의 말을 인용, 한국에는 인권이 부인되고 민주주의가 아닌 것처럼 과장 보도." (1985년 2월, 류병현 당시 주미대사)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한국 민주화의 상징격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갈등을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오늘날에도 하나둘 발굴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1985년 2월 이른바 '2차 미국 망명'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을 의식해 재외공관들에 비상을 걸었음을 시사하는 문건들도 외교부가 심의를 거쳐 선보였다.
문건들에 따르면 정부 인사도 아닌 김대중 관련 현지 언론 동향 파악에 재외공관들이 진땀을 뺀 것으로 보인다. 한때 '현역군인의 수장'격인 합참의장 출신 인사나 대통령비서실장 출신 인사들이 대사로 발탁된 뒤 현지 보도를 분석한 내용을 본국에 보고했다. 이제는 두 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떠난 고위 외교관들이 남긴 기록물이다.
1985년 2월 류병현 당시 주미대사(2020년 5월 별세)가 본국 외무부(현 외교부)에 보낸 3급 비밀 문건이 한 예다. 류 대사는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초대 부사령관, 1978~1981년 합참 의장을 지냈으며 12·12 군사 반란(1979년) 당시 반란군(전두환측)이 아닌 진압군(정승화측)에 속했던 예비역 대장 출신 인사다.
3급 비밀은 '암구호'처럼 노출될 경우 안보에 '상당한 위험'(2급은 현저한, 1급은 치명적인 위험)을 끼치는 등급이다. 류 대사는 이 '3급 비밀' 문건에서 "2.8. NBC 17:00 1분, NBC 19:00 3분. 2.11. NBC 12:00 3분' 하는 식으로 언뜻 보면 암호문처럼 보이는 문서를 외무부에 보냈다. 실제론 '김대중 귀국'을 방송한 현지 방송국명과 방송 시각·분량이다. 외신 방송 시간이나 대사관의 '독후감'을 비밀에 부쳤던 셈이다.
류 대사는 미국에서 2차 망명을 끝낸 김 전 대통령이 한국에 귀국하는 순간 등을 다룬 미국 방송이 편파성을 보인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런 문건들의 하단에는 참조 수신처인듯 청와대 총리실 안기부 등이 기재돼 있다.
1985년 2월 주 유엔 대사 명의로 외무부에 '김대중 귀국' 관련 미국 내 언론 동향을 본국에 보고한 문건도 존재한다. 문건에 기재된 시점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0년 9월부터 1982년 1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경원 대사(2012년 별세)가 주 유엔 대사에 재임하던 때다.
해당 문건에는 "뉴스 보도 및 특집 초기에는 현장 TV의 보도와 DERIAN(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에 온 패트리샤 데리언 전 미 국무성 인권담당차관보) 등의 공항 폭행을 계속 주장하는 장면 보도 등 일반적으로 과장 확대 보도하는 미 상업 방송 매스컴 특유의 성향으로 인해 한국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적혀있다. 다만 초기 보도 이후론 균형 잡힌 보도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후 현지 경찰과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포공항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사전 사후 등 단계적 시나리오에 맞춰 아측이 주도적으로 아측에 유리한 보도초점을 제공하면서 일찍부터 사전 정보와 뉴스거리를 제공해 주는 적극 홍보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이라는 문구도 나온다. 이 역시 3급 비밀이다.
미국 유력매체에 김대중 관련 기고문에 대한 항의를 했다는 내용의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명의 문건도 있다. 황광한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2012년 별세)가 재임하던 때 작성됐다. 황 총영사는 육군 준장 출신으로 2000년대 '저격수 양성론'을 주장하며 눈길을 끌었던 군사외교 전문가였다.
발신자가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인 대외비 문건에는 1985년 2월 "당관 문화원장은 2.12. L.A. 타임즈의 주필 및 외신부장과 접촉, PATT DERIAN의 김대중 관계 편향적 기고기사의 일방적 제재를 강력히 항의하고 동 기사에 대한 반박문 게재 등 대응조치 협조를 요청했음"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도 같은 시기에 "전두환 대통령의 방미는 지난 83. 8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시 초청에 의한 것이며, 김(김대중)의 귀국과는 관련이 없음"이라는 요지의 기고문을 사우디 현지 매체에 실었다는 보고를 외무부에 올렸다. 최광수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2021년 별세)가 재임하던 시절 쓰여진 문건이다. 최 대사는 1985년 2월에는 박정희 정권 당시 국방차관 출신이다. 10·26 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 체제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으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외무부 장관도 지냈다.
이런 전두환 정권의 외신 모니터링·대응이 미국 조야에 어떤 효과를 미쳤는지는 미지수다.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조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이던 1986년 2월 에드워드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존 케리(전 미 국무장관·현 미 대통령 기후특사) 등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7명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에 대한 탄압 우려를 제기한 편지를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냈다.
당시 '바이든 의원'은 서한에서 전두환 정권을 겨냥해 "탄압이 김대중과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민주화 약속의 진실성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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