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무엇을 위한 '종부세 보도'인가

김영희 2021. 11. 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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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폭탄·패닉·공포" 연일 강조
민언련 모니터링 통해 '왜곡보도' 비판
<한겨레> 자료 사진

· ‘부글부글 종부세, 100만명 시대’(한국일보)
· ‘종부세 평균 600만원, 1주택도 152만원 낸다’(중앙일보)
· ‘올 종부세 대상자 95만명…문 정부 들어 3배 급증’(한국경제)
· ‘종부세 대상 94만명…1년 만에 42% 늘었다’(조선일보)
· ‘올해 종부세의 89% 다주택자·법인 부과’(경향신문)
· ‘종부세 94만명…“25억 이하 1주택자는 평균 50만원”’(한겨레)

지난 22일 고지된 올해 주택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소식을 각 신문이 1면에 실으면서 붙인 기사 제목이다. 같은 사안이지만 강조하는 바가 달랐다. 특히 일부 언론들은 연일 ‘세금 폭탄론’을 부각하는 보도들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치를 내세워 종부세 취지를 외면하는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6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 그리고 3개 지상파와 4개 종편 종합뉴스 등이 최근 전한 종부세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해 공개했다. 11월16~23일 빅카인즈와 포털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54개 언론사 뉴스도 별도로 분석했다.

우선 보도 중엔 ‘94만명’이나 ‘42% 증가’ 같은 수치를 강조한 사례들이 많았다. 틀린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94만명은 전국민의 2%에 해당하는 수치며, 42% 증가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인 납세자는 36% 증가한 반면 법인 납세자가 287.5% 증가한 데 따른 것임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언련은 이런 보도를 내놓는 언론사들이 주로 종부세 증가 사례로 개인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상황에 따라 더 커 보이고 과하게 판단할 수 있는 수치를 갖다 쓴 것”이라고 비판했다.

종부세 대상자가 국민의 2%만 해당한다는 지적들이 나오자 이를 비판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주택 소유 가구는 1173만가구(작년 11월 기준)”로 “종부세 대상자가 모두 독립된 가구라고 가정할 경우 종부세 납세 가구 비율은 전국 가구 수의 4.0%, 유주택 가구의 8.1%”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매일경제>도 ‘2%라더니…전국민 종부세 영향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유아 등 모든 연령층이 포함된 인구로 종부세 비중을 계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문가들이 꼬집었다고 전했다.

물론 정부가 종부세 대상자가 2%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98%는 무관하다”고 설명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주택 소유자가 내는 것이 실질적으론 가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부세는 세대나 가구별 과세가 아니라 인별 과세다. 게다가 세액을 줄일 각종 장치들이 늘어나며 종부세가 ‘세금폭탄’이 아니라 ‘이빠진 호랑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한겨레 보도)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기존의 노령자 공제와 장기보유 공제와 함께 올해부터 부부 공동보유자도 과세특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다주택 보유 가구들이 가족 간 증여로 명의를 분산하는 관행 또한 이번 종부세 과세에 맞물려 보편화됐다. 조선일보식의 납세 가구 비율 또한 현실보다 훨씬 부풀려진 수치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민언련은 “종부세가 인별 과세임을 무시한 채 종부세 대상 비율을 높이기 위해 유주택자 중 종부세 납부 비율을 계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언론이 주목해야 할 숫자는 종부세 고지세액 중 89%를 다주택자와 법인이 부담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선택적 수치 보도’의 문제도 있지만, 종부세를 ‘폭탄’, ‘역대급’, ‘쇼크’, ‘충격’, ‘패닉’과 같이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보도하는 양상은 종부세 문제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시민들로부터 앗아간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민언련 보고서에 따르면 11월16~23일 사이 빅카인즈에선 383건, 네이버에선 959건이 이런 단어들을 사용한 보도로 검색됐는데, 매일경제 등 경제지 5곳과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상위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1가구1주택 과세기준율까지 상향조정되며 종부세 대상은 시가 15억~16억 이상 주택 보유자다.

민언련은 “실수요자 보호 장치에 문제가 없는지 불합리한 과세 측면이 없는지 따지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부의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집값 안정과 조세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종부세를 마치 전 국민이 세금폭탄을 맞을 것처럼 소개한다면 왜곡보도에 다름 아니다”라며 ‘2%를 대변하는’ 일부 언론들을 꼬집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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