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떨어지는데 주식 3조8000억어치 쓸어담은 외국인, 왜

황의영 2021. 11. 2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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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증시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원화 값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통상 원화값이 하락하면(환율 상승) 외국인은 주식을 순매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만큼, 원화값이 떨어지면 투자분에 대해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을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흐름은 이와 달랐다. 원화가치는 지난달 말 달러당 1168.6원에서 24일 1186.5원으로 1.5% 하락(환율은 상승)했는데, 이 기간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3조7688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3조원가량 내다 팔던 '셀 코리아' 기세와는 딴판이다.

달러 강세에 달러당 원화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원화 약세 제한적" 기대


외국인의 '사자'는 우선 "원화 약세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원화값이 달러당 1250원 아래로 밀리면 환차손을 입겠지만, 특별한 리스크(위험)가 부각되지 않는 한 심리적 지지선인 1200원을 뚫지 못할 것"이라며 "외국인이 조만간 원화값이 반등해 환차익을 볼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의 성격도 종전과는 차별화하는 모양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24일 장중 한때 96.6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다. 이달 들어서만 2.6% 올랐다.

강달러의 배경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임박 등도 있지만 유럽의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유로화 약세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신흥국 경기 부진이나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촉발된 게 아닌 만큼 외국인이 한국에서 주식을 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달러 강세가 외국인의 자금 이탈로 이어진다는 등식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화값 떨어지는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삼전·SK하이닉스 쓸어담아


국내 증시를 짓눌렀던 악재가 진정 조짐을 보이는 것도 순매수에 영향을 줬다. 중국 경제 리스크와 치솟는 국제유가 흐름이 더 악화하지 않는 가운데, 반도체 업황 바닥론까지 나오면서다. 지난 8월 '반도체, 겨울이 오고 있다'는 부정적 보고서를 썼던 모건스탠리는 "4분기 D램 가격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며 입장을 바꿨다.

D램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으로, D램 가격 흐름은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척도 역할을 한다. 씨티그룹도 "D램 가격 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미국 제2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선정됐다는 소식도 반도체 업황이 최악 국면이 지났다는 심리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실제 외국인은 22~24일 사흘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9301억원, 398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이 기간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수액(1조3979억원) 전체에 육박하는 수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외국인이 국내 반도체 주식이 상대적으로 싸다고 보고, 현시점을 저점 매수 기회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국내 주식 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외국인 매수세가 계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아직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명지 팀장은 "저평가된 반도체 주식에 국한해 외국인 자금이 더 들어올 가능성은 있지만, '바이 코리아'가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의 움직임을 가를 변수는 미국 금리 인상 논의, 중국 경기의 안정 여부다. 정용택 본부장은 "외국인의 일방적 매도는 지났고 박스권에서 한국 주식을 사고파는 흐름을 보인다"며 "중국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돼야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주식을 살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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