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열기는 장마철 폭우"..전두환의 인식
[앵커]
전두환 씨는 집권 뒤 폭압정치에 맞서 저항하는 민주화 열망을 거세게 탄압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물론 삼청교육대, 박종철 고문 치사 등 희생도 컸는데, 이에 대해 전 씨는 어떤 입장이었는지, KBS가 보유한 영상 자료를 통해 되짚어봤습니다.
손서영 기잡니다.
[리포트]
사회악 척결과 정의 실현을 내걸었던 삼청교육대.
불량배를 소탕하겠다 했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갔고, 공식적으로만 54명이 숨졌습니다.
그래도 전 씨는 미화에 급급했습니다.
[전두환/1980년 8월 : "깡패들을 잡아다가 사단, 전방 부대에서 지금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아주 잘 잡아갔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탄압과 폭력이 체제 장악 도구가 됐던 시기, 언론은 독재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전두환/1982년 7월 : "북한의 위협이 없다든지, 주변 강대국이 없다든지 하면 그런 식으로 우리도 평화롭게 서로 비판도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럴 여유가 없어요."]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으로 민주화를 탄압하던 정권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노태우/87년 1월 : "우리 총재 각하 내외의 만수무강하심을..."]
사망 소식이 보도되던 날, 청와대에서는 전 씨의 56번째 생일 잔치가 열렸습니다.
[전두환/87년 8월 : "현실은 몇 권의 책만으로 다 알기에는 너무나도 복잡다기하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성급한 결론 내려버리고 거기에 목숨까지 거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사망이 6.10 민주항쟁으로 번질 때도, 전 씨는 민주화 열망을 지나가는 폭우 정도로 여깁니다.
[전두환/87년 8월 : "요즘 분출되고 있는 각종의 욕구와 민주 발전의 열기를 두고, 마치 장마철의 폭우와 같다고 비유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리를 떠나는 날에는 이런 언급을 했습니다.
[전두환/88년 2월/고별기자회견 : "내 전임자들이 이래서 권력을 내놓고 나가기가 참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자신의 철권통치를 정당화했던 전 씨의 이런 언급들은 결국, 전 씨 역사적 평가를 강화하는 언어로 남게 됐습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영상편집:이상미
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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