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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물었다 "종이봉투, 정말 필요하세요?"..영국서 만난 '제로웨이스트'

김민제 입력 2021. 11. 25. 05:06 수정 2021. 11. 2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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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6 글래스고 통신][COP26 글래스고 통신 34]
제로웨이스트 상점 접근성 높아
기부·중고물품 재거래도 활성화
폐기물 사전감소 정책 선도하지만
발생 폐기물의 분리배출 효율 떨어져
지난 11일(현지시각) 찾은 영국 글래스고 벨그로브 지역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마켓’. 각종 파스타가 용기에 담겨있다. 가게를 찾는 고객들은 직접 챙겨온 빈 병과 장바구니에 음식을 담아가야 한다.

‘시리얼, 곡물, 파스타, 견과류, 기름, 허브, 과일, 야채, 우유, 달걀’.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벨그로브 지역의 한 식료품점 입구 알림판에 식재료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곳에서 오늘 리필(refill)이 가능한 항목들이다. 내부로 들어서자 10평 남짓한 공간을 질서정연하게 채운 과일과 야채, 올리브 오일, 알록달록한 파스타 면이 눈에 들어왔다. 한끼 식사를 차리는 데 필요한 식재료는 다 있는 듯했다. 없는 게 있다면 이 물건을 담아갈 플라스틱 봉투다. 가게를 찾는 고객들은 직접 챙겨온 빈 병과 장바구니에 음식을 담아가야 한다. 이곳의 상호명은 ‘제로웨이스트마켓’(zero waste market), 주인 그라함 샤프(31)는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런던 등지에서 플라스틱 없는 매장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의장국 영국은 기후대응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나라 안팎에서 받는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이나 에너지 전환 등을 여타 국가보다 앞서 시작했다. 이런 영국에서 폐기물 관리·자원재순환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또하나의 선행과제다. COP26이 열린 이달 첫 2주간 글래스고 일대를 돌며 영국의 제로웨이스트 현황을 돌아봤다.

지난 11일 ‘제로웨이스트마켓’ 입구 안내판. 당일 리필이 가능한 식료품들이 안내되어 있다.

동네 마트에서 만나는 제로웨이스트

영국에서도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도처에 널렸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주택 단지 인근이나 지하철역 주변, 번화가 곳곳에서 한두곳씩은 만나게 된다. 공원에 대한 접근성처럼, 대체로 개인의 생활 반경 안에 위치해 있다.

지난 11일 찾은 영국 글래스고 파틱 지역의 ‘로카보르’(locavore) 매장. 종이봉투 아래에 ‘종이봉투가 실제로 필요한지 고려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글래스고에 3개 지점을 두고 있는 유기농 식료품점 ‘로카보르’(locavore)도 그중 하나다. 사명이 ‘기후위기에 맞서 식량 체계를 재건한다’이다. 지난 11일 찾아간 글래스고 파틱 지역의 매장 벽면에 식료품, 세제, 세면용품 등이 가득 찬 대용량 용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용기 끝에 달린 바를 당기면 내용물이 아래로 쏟아지고, 개인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아가면 된다. 과일처럼 부피가 큰 제품의 경우 담아갈 종이 소재의 일회용 봉투를 비치했다. 옆에는 “이 종이봉투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고려해보라”는 문구가 적혔다.

영국 런던 소호 한복판에 위치한 ‘홀푸드마켓’(whole food market). 야채를 담아갈 종이봉투가 비치되어 있다. 몇몇 야채와 과일은 플라스틱 비닐로 감싸져 있는 게 보인다.

인구 100만명이 밀집한 대도시 런던에서는 보다 자주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보였다. 검색창에 런던 내 위치를 입력하면 주변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찾아주는 ‘유스리스’(useless)라는 이름의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쇼핑의 성지 소호에서도 쓰레기를 덜 만들며 소비할 공간이 있었다. 지난 13일, 소호 한복판에 자리한 유기농 식품 판매 체인 홀푸드마켓(whole food market)을 찾아가봤다. 홀푸드마켓은 ‘비건워싱’(채식 친화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 등으로 비판도 받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조리 식품 판매 코너에서는 종이 그릇과 나무 수저가 제공됐고 야채 코너 옆에는 종이봉투가 꽂혀 있었다. 매장 곳곳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활용하거나 퇴비화한다”는 홍보 글귀가 적혀있었다.

지난 11일 찾은 영국 ‘부츠’(boots) 매장.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아닌 일반 드럭스토어인데 플라스틱 비닐 없이 화장품만 놓여있다. 화려한 패키지와 여러겹의 포장재로 감싼 한국 화장품과 다른 모습이다.

제로웨이스트 문화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플라스틱을 사지 않을 권리’나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글래스고 동부지역에서 제로웨이스트마켓을 운영하는 그라함 샤프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로 장을 볼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며 “영국에서도 제로웨이스트 가게는 아직 새로운 것이지만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나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새것 아니면 어때서?…거부감 없고 인기인 중고제품

제품 판매 단계에서 포장 쓰레기를 덜 만들려는 추세가 최근 영국에서 확산하고 있다면, 한번 쓴 제품을 재사용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익숙한 문화다. 특히 기부 물품을 중고로 파는 자선상점(charity shop)을 매개로 이러한 움직임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10일 찾은 글래스고 중앙역 인근 옥스팜 자선상점. 평일 오후 시간대인데도 고객들로 붐빈다.

자선상점은 한국의 사회적기업 ‘아름다운 가게’와 유사하게 옷이나 책, 가구, 찻잔, 가방, 가전제품 등 각종 중고물품을 기부 받고 이를 싼 가격에 되파는 중고 매장이다. 옥스팜, 적십자,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구호 단체에서 주로 운영한다. 수익금은 빈곤 퇴치, 아동 보전, 의료 구호 활동 등 각 단체에서 정한 공익적 목적에 맞게 쓰인다. 티셔츠 한 장은 1파운드(약 1590원), 고급 가구는 1000파운드(159만원)로 가격대는 다양하다. 영국 내 옥스팜에서 운영하는 매장은 약 750개, 적십자는 약 330개, 세이브더칠드런은 90개 가량이 있을 정도로 자선 상점은 영국 전역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지난 10일 방문한 글래스고 중앙역 인근 옥스팜 자선상점 안에는 재킷, 신발, 모자 같은 의류와 샴푸와 비누 등 세면용품, 텀블러, 찻잔, 접시, 크리스마스 소품 등이 품목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평일 오후 3시께의 글래스고 시내는 한산했지만 옥스팜 자선상점 안은 6~7명의 고객들이 드나들며 북적거렸다. 계산을 위해선 줄을 서야 했다.

지난 10일 찾은 옥스팜 자선상점. 기부 받은 그릇과 찻잔이 진열되어 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해온 한국 교민 박주희(42)씨는 영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손때가 탄 중고 물품에 대한 반감이 현저히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피부가 닿은 옷도 채리티샵에서 많이 사곤 한다”며 “돈이 없어 가는 매장이 아닌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득템’하는 곳으로 인식된다. 소중하게 쓴 물건이 타인에게 가서 또 활용되는 것을 뜻깊게 생각하기도 하고, 환경 문제를 생각해 채리티샵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버려진 쓰레기 처리는…분리수거 안 된 채 ‘뒤죽박죽’

이처럼 포장재 이용을 최소화하고 중고 물품을 재사용하는 등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려는 노력은 자국내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내년 4월부터는 플라스틱 포장재의 생산과 공급 과정에서 일정 비율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플라스틱 포장재 세금’을 물리는 등 순환경제 정책도 본격 추진된다.

하지만 틈도 있어 보였다. 특히 제조와 판매 이후 이미 버려진 쓰레기, 즉 폐기물의 분리배출 등 재활용이 원활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난 10일 글래스고 대성당 인근 길거리에 설치된 공용 쓰레기통. 개의 분변과 쓰레기를 함께 버리라고 나온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3일까지 글래스고와 런던 아파트와 거리 등을 살핀 결과, 한국과 같은 세세한 분리수거 체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플라스틱 수거함과 일반 쓰레기통이 나뉘어져 있었으나, 일반 쓰레기통 안에 음식물 쓰레기와 페트병, 비닐 등이 한 데 모여 버려진 장면이 수시로 보였다.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봉지에 여러 종류의 쓰레기가 담긴 모습이었다. 대로변에 설치된 공용 쓰레기통에는 개의 분변과 쓰레기를 함께 버려도 된다는 안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영국 환경청에서 지난 2014년 12월 공개한 ‘폐지, 플라스틱, 금속 또는 유리의 분리수거’ 규정에 따르면 공공 및 민간 폐기물 수집 업자는 플라스틱과 종이, 금속, 유리를 분리해 수거해야 한다. 1차 폐기 단계에서부터 각종 쓰레기가 뒤섞인 탓에, 수거와 선별 단계에서 얼마나 꼼꼼하게 분류될지는 미지수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영국은 ‘혼합 배출 후 선별’하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처리해왔다”며 “선별에 예산을 많이 투입하고 기술을 갖춰도 한국만큼 재활용이 잘 되지 못하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포장재 개선을 통해 애초에 쓰레기를 덜 발생시키자는 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추세이고, 영국도 이를 따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영국은 지자체별 분리수거 정책이 다르고 편차가 크다”면서도 “영국의 생산자들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하는 방식을 통해서 재활용 실적을 달성하곤 했다. 자국 내 재활용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9년 기준 영국 전체의 가정 내 폐기물 재활용 비율은 46.2%, 잉글랜드는 45.5%, 북아일랜드는 50.6%, 스코틀랜드는 44.9%, 웨일즈는 56.4%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그린피스는 지난 4월 보도자료를 내어 “정부가 재활용한다고 주장하는 가정용 플라스틱 포장재의 절반 이상이 해외로 보내진다”며 “그 중 대부분은 재활용률이 매우 낮고 플라스틱 폐기물이 불법적으로 버려지거나 소각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국가로 간다”고 주장했다.

글래스고/글·사진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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